병원으로 돌아간 노엘 로즈는 간단한 수술도구와 약품을 되는대로 자신의 왕진 가방에 쑤셔 넣었다. 의약품 상자 앞에서 잠시 몰핀을 가져갈까 하다가 포기했다.

 

전쟁 중이 아니라도 몰핀은 귀한 것이었다. 분명 나중에 조사할 것이 분명했다. 전쟁이 심해질 수 록 병원 역시 의약품이 부족해졌다. 설사 병원 의사라 할지라도 무단으로 가지고 나간 것이 알려지면, 심한 추궁을 받을 것이 뻔했다.

 

‘ 할 수 없어. 이건 포기해야 해.’

급히 진료실은 나가던 노엘 로즈는 누군가와 부딪힐 뻔 했다.

 

“ 선생님? ”

델핀이 놀란 얼굴로 노엘 로즈를 바라봤다.

 

“ 선생님? 어디 가세요? 오후 진료는요? ”

“ 나중에 말할께요- ”

 

노엘 로즈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지금 노엘 로즈의 머리 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 밖에 없었다.

‘ 제발 버텨라! 갈 때까지 버텨! 제롬- ’

 

허겁지겁 삼촌 집 서재에 들어선 노엘 로즈는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서재 바닥 아래 쓰러져 있는 제롬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식은땀에 젖은 제롬의 새하얀 얼굴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고, 그것은 그를 더욱 더 시체 같이 보이게 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죽었는지도 몰랐다.

황급히 노엘 로즈는 제롬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미약하지만 그의 심장은 뛰고 있었다.

‘ 감사합니다. 주님 ’

 

그녀는 재빨리 가져온 왕진 가방을 열었다.

 

가지고 온 항생제와 마취제를 제롬에게 주사했다. 그녀의 앞에 있는 제롬의 환부는 생각보다 골치 아픈 상태였다. 위치가 애매했다. 잘못하면 간을 건드릴 수 도 있었다. 노엘 로즈는 긴장감에 깊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었다.

 

그녀는 메쓰를 손에 들었다.

‘ 살릴 수 있어. 괜찮아. ’

 

가볍게 성호를 그은 노엘 로즈는 상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노엘 로즈는 메쓰로 환부를 열고 고름과 총알을 조심스레 차근차근 제거했다.

 

“ 땡그랑 ”

총알은 전부 3개 였다. 일주일간 제롬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총알이 노엘 로즈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처를 꼼꼼히 꿰매는 노엘 로즈의 손끝은 노련했고, 처치는 신속하게 깔끔하게 진행됐다. 곧 제롬의 옆구리는 하얀 붕대가 둘러졌다.

 

‘ 휴우- 끝났어... ’

치료는 이제 다 끝났지만 제롬은 아직 혼수상태였다.

 

정신을 완전히 잃은 제롬의 불규칙한 숨소리를 들으며, 노엘 로즈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지친 얼굴을 쓰다듬었다. 안도감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깊이 들어간 그의 눈자위가 더욱 어둡게 보였다. 상처도 상처지만 그동안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도 극심했을 것이다.

 

‘ 그나 저나 당신 정체는 도대체 뭐지... ’

 

한 숨 돌린 그녀는 제롬이 숨어있던 서재의 비밀 장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롬의 정체를 알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방 안은 지저분했고, 여러 가지 물건들로 가득했다. 문뜩 그녀의 눈에 뭔가 들어왔다. 그것은 서재 바닥에 떨어진 셔츠였다. 제롬의 것인 듯 했다.

 

‘ 이건... ! ’

셔츠의 가슴부분에는 손바닥 크기의 노란색 헝겊으로 만들어진 6개의 뾰족한 모서리가 있는 별이 있었다. 검은색 윤곽선이 둘러쳐져 있는 노란 벽 안에는 검은색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 유태인. ’

 

작년 6월부터였다. 파리에 사는 6세 이상의 모든 유태인들은 가슴에 노란별을 달아야 하고, 지정된 시간에만 외출할 수 있었다는 지령이 내려온 것은.

 

그 다음 달인 7월과 8월에는 벨리브에서 유대인 대량 검거가 벌어졌었다. 그때 잡힌 유대인들은 벨젠의 수용소로 강제로 보내졌고, 보내진 자들은 거의 대부분 죽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도망친 이들도 있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렇지만 극소수라 했다. 그들을 숨겨주는 사람들 역시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했다.

 

노엘 로즈는 혼수 상태인 제롬을 바라보며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 도망친 유태인을 숨겨주다니... 삼촌 너무 위험한 일을 하셨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