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나이더와 헤어진 후 노엘로즈는 곧바로 뱅상의 병실로 향했다.

 

“ 삼촌! ”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노엘 로즈를 보자 뱅상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 노엘- 찾았나 보구나. 네 얼굴을 보니 내가 부탁한 걸 잘 찾았어. ”

“ 삼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녀석을 거기에 숨겨 놓으신 거예요 - ”

“ 쉿- 목소리 좀 낮춰. 벽이 얇다. ”

‘ 그래. 이 병원에는 사람도 많고 병실문도 얇으니까.’

 

노엘 로즈는 심호흡을 하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 그래, 그 녀석 상태는? ”

 

하지만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뱅상의 모습을 보자 노엘 로즈는 더욱 부아가 났다.

 

“ 삼촌이 한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아세요? ”

“ 안다. 알아. 최대한 조심했어. 아무도 모를 거야. 그보다 그 녀석 아니, 그 책 상태는? ”

 

아무래도 제롬을 그렇게 지칭하는 것이 좀 더 안전하겠다 싶은 모양이었다. 조바심으로 얼굴이 찡그려지는 뱅상을 보자 노엘 로즈는 삼촌이 제롬은 얼마나 아끼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 말릴 수 없는 분이야.’

 

노엘 로즈는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 꼴이 말이 아니길래, 싹 새로 수선을 해놨습니다. 조만간 새 책처럼 되겠죠. ”

“ 그래? 정말 다행이구나. 내가 퇴원할 때까지만 부탁한다.”

 

뱅상의 얼굴은 진지했다.

 

“ 퇴원 후에는요? 그 담엔 어쩌시려고요? ”

“ 그건....내가 알아서 하마.”

“ 설마 계속 그 서재에 두겠다는 말은 아니죠? ”

 

노엘 로즈가 노려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뱅상은 계속 머리를 긁으며 그런 노엘 로즈의 눈치를 살폈다.

 

“ 미안하다. 너는 정말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

“ 지금 그게 중요해요- 어쩌실 거예요. 그 남자, 아니 그 책- ”

“ .... ”

 

뱅상은 대답을 못한 채 우물쭈물 눈길을 피했다.

 

“ 독일군이 알아채는 거 시간 문제예요.”

“ 그럴 리 없어. 아무도 몰라. ”

“ 말도 안되는 소리. 적어도 안느 아줌마는 아실 거 아니예요.”

“ 안느에게는 세 달 전에 휴가를 줬다.”

“ 세 달이요? 그럼 그 남자를 숨겨준 게 벌써 세달- ”

 

노엘 로즈는 어이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 쉿- 듣겠다. 벽이 얇다니까. ”

 

총상을 입은 게 1주일 됐다고 해서 1주일인 줄 알았던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가.

 

이 어이없는 노인네는 3달이 넘도록 도망친 유태인을 자신의 은신처에 숨겨 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 삼촌-! ”

“ 노엘- 제발- 목소리 좀- ”

 

그래, 이 병원은 벽이 얇다. 침착하자.

 

“ ... 그러니까 그 남자, 아니 그 책을 세 달이나 삼촌 서재에 숨겨놨던 거군요. ”

 

뱅상은 뒷머리를 긁었다.

 

“ .... 그게...”

“ 전 삼촌 위험해지는 꼴 못 봐요. ”

“ 뭘 어쩌려고- ”

 

뱅상의 목소리가 걱정으로 자기도 모르게 높아졌다.

 

“ 당장 내보내겠어요. ”

“ 지금? 제롬을? 그건 안돼- ”

“ 삼촌이 못하시면 제가 해요.”

“ 노엘 - 얘야- 안됀다- 노엘- ”

 

다급할 때마다 삼촌은 노엘 로즈를 이렇게 불렀다.

 

“ 죄송해요. 삼촌. ”

“ 노엘- ”

 

뱅상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노엘 로즈는 병실을 나와 버렸다.

 

뱅상이 애원을 하던 말건 화를 내던 말던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2차 대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 여기 파리는 나치의 지배 하에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뱅상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 그래, 그 남자를 이렇게 숨겨 둘 수는 없어. 오늘 당장이라도 나가 달라고 말할 수 밖에. ’

 

퇴근 후 뱅상의 집으로 향한 노엘 로즈는 들어가기 전 크게 심호흡을 했다. 현관을 지나 서재에 들어선 노엘 로즈는 서재의 은신처인 3면 중 하나인 책장문을 힘겹게 열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서재의 은신처 내밀한 깊숙한 곳까지 비쳤다.

 

이 은신처는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시작하자마자 뱅상이 만들었다. 그때는 30대였던 뱅상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서재 안에 비밀 공간을 만들었지만 그곳은 한 번도 제대로 은신처로 쓰인 적 없었다.

 

그저 어린 노엘 로즈와 뱅상 삼촌의 숨바꼭질 장소로나 쓰였을 뿐, 그것도 노엘 로즈가 오지 않게 되자 내내 잡동사니를 쌓아놓는 창고로 쓰였었단 장소였다. 어찌 보면 이 은신처는 제롬으로 인해 본래의 목적을 이룬 셈이었다.

 

은신처 안에는 별다른 물건 없이 1인용 작은 간이침대 하나만 놓여 있었고 침대 위에는 여전히 의식 불명인 제롬이 누워 있었다. 노엘 로즈는 침대에 다가가 걸터앉은 채 제롬을 내려다 봤다.

 

‘ 휴우-- 여기서 석 달이나 지낸 건가...’

 

정신을 잃은 채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제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무겁고 짠해졌다.

 

“ 으윽- ”

 

제롬은 자기도 모르게 고통으로 신음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렸다.

 

“ 어, 이제 정신을 차렸나? ”

 

제롬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눈 앞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잠시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마에 흐르는 땀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뭔가에 열심히 집중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다갈색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날카로운 가위가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