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엘 로-즈-!! 정말 오랜만이구나-! ”

 

제롬에 대한 죄책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뱅상의 집을 나서는 로엘 로즈를 누군가 와락 끌어 안았다. 오동통하고 귀여운 인상의 중년여인이 노엘로즈를 향해 반가움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안느 아줌마- ”

“ 노엘 로즈-이쁜 건 여전하구나." ”

 

안느는 뱅상의 가정부였다. 노엘 로즈 역시 갓난 아기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안느와 노엘 로즈는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사이였다.

 

“ 그동안 많이 바빴니? 어쩜 1년 동안 안 올 수가 있니- 어쩌면,”

 

안느는 노엘 로즈를 한 번 더 꽈악 안았다.

 

“ 보고 싶었어요. 안느 아줌마.”

“ 호호호- 나는 안 보고 싶더라도 내가 만든 마카롱은 보고 싶었을 거다. ”

“ 후후, 그건 알고 계셨네요. ”

“ 근데 얘야- 노엘 로즈 - ”

 

갑자기 안느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해버렸다.

 

“ 뱅상 교수님이 어쩜 나에게 이러실 수가 있니? ”

“ 왜요, 아줌마? ”

“ 갑자기 나한테 휴가를 가라고 하시더니 글쎄,이 집 열쇠를 내놓으라고 하시잖아. 어떻게 나한테 열쇠를 내놓으라고 할 수가 있니? 30년 간 가지고 있던 열쇠를- ”

“ 네? ”

“ 이럴 게 아니라 너 온 김에 교수님 좀 봐야겠다. ”

“ 아줌마? ”

 

안느는 말릴 새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 안느 아줌마! ”

 

아차 하는 순간 안느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서재에는 제롬이 여전히 있을 터였다. 안느의 뒤를 쫓아 노엘 로즈는 허둥지둥 따라 들어가며 그녀를 불러 세웠지만 어느새 그녀는 거실을 지나 서재 앞까지 가고 있었다.

 

“ 아이고- 이 엉망진창인 꼴 좀 봐- "

 

제롬은 은신처에 잘 숨어 있는 걸까, 아니면 미처 숨지 못한 걸까?

 

“ 안느 아줌마! 안느 아줌마! 서재엔 왜요?!”

 

노엘 로즈는 초초함에 큰소리로 외쳤다. 제롬이 듣기를 바라며.

 

하지만 벌써 안느는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선 다음이었다.

 

“ 어머?! 뭐야?! ”

‘ 설마ー! ’

 

노엘 로즈는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섰다. 서재 안에는 다행히 제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책장문은 잘 닫혀 있었다.

 

안느는 바닥에 쌓여 있는 책 더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 내가 없으니까 바로 이 꼴이 나는구나. 이러면서 왜 나한테 얼토당토않게 휴가를 가라는 건지, 원. 집 안은 이렇게 엉망을 해 놓고 교수님은 어딜 가신건지...쯧쯧 ”

 

노엘 로즈는 속으로 대답했다.

 

‘ 죄송해요. 안느 아줌마. 그건 전부 제롬 때문이예요. ’

“ 일주일 전부터는 갑자기 나한테 휴가를 줄테니 당분간 오지 말라고 하시는 거야. 그러더니 이 집 열쇠까지 내놓으라고. ”

 

안느의 넑두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듯 했다.

 

“ 열쇠라니.어림도 없지. 내가 순순히 내줄 거 같니- 나중에는 나도 막 교수님한테 그만두겠다고 소리를 질렀단다. 그랬더니 그 양반도 나한테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라고 막 소리를 지르지 뭐니- 그래서 나도 승질이 나서 한 일주일 안 왔지- ”

 

노엘 로즈는 그제서야 집이 엉망인 이유를 알게 됐다.

 

“ 안느 아줌마, 뱅상 삼촌은 지금 여기 안 계세요- ”

“ 응? 그럼 어디 계신데? ”

“ 병원이요. 우리 병원. ”

“ 뭐-?!! ”

 

안느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지더니 눈물을 글썽거렸다.

 

“ 그래, 혼자 완성할 그림이 있다는 말도 안돼는 핑계를 대시는 거부터 이상했어. 세 달 전부터는 갑자기 서재에는 얼씬도 말라시며 작품에 방해가 된다고 하질 않나.”

“ 그림이요? ”

“ 그래, 그 양반이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다니... 내가 서재 근처에만 가도 막 짜증을 부리시고. 손님이 방문해도 없다고 그러라고 하질 않나, 진짜 이상해지셨다니까. 나를 해고시키려고 그러시는 건가 싶어 어찌나 섭섭하던지.”

 

‘ 30년 된 충성스런 가정부에게도 제롬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시다니, 뱅상 삼촌도 이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잘 알고 계셨군. ’

 

노엘 로즈는 안느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제롬이었지만 노엘 로즈는 안느에게 말할 수 없었다. 순진하게 상대의 말을 의심 없이 잘 믿는 안느였으니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진작에 제롬의 존재를 눈치챘을 지도 몰랐다.

 

“ 뱅상 삼촌 아시잖아요. 안느 아줌마 없으면 하루도 못 사실 분인 거. ”

“ 그래, 그런 분이신데...내 잘못이야. ”

 

갑자기 안느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안느 아줌마? ”

“ 역시... 치매였구나- ”

“ 네? 치매요? ”

 

순간 노엘 로즈는 어리둥절해서 안느를 바라봤다.

 

“ 그래, 치매- 그거 밖에 더 있니? 오늘에서야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오른 거야. 나도 바보 같지. 노엘 로즈, 치매란 게 이런 거니? 어쩜 이렇게 몇 달 만에 다른 분이 돼실 수 있지- .”

 

노엘 로즈는 그제서야 이 정 많은 안느가 어떤 마음으로 뱅상 삼촌네 집으로 달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음 착한 안느는 뱅상의 갑작스런 변화가 치매라고 생각돼서 이렇게 황급히 달려왔던 거였다.

 

“ 안느.. 아줌마.. ”

 

웃음 참느라 노엘 로즈의 목소리가 이상해졌다.

 

“ 그래, 네가 의사인 걸 내가 깜박했구나. 얘야-노엘 로즈야. 처음부터 알았다면 너에게 제일 먼저 연락했을 텐데 ...하긴, 이제 낼 모레 일흔이니 치매에 걸렸다 해도 이상할 연세는 아니지. 그치만 -그렇게 총기가 넘치시던 분이 어떻게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돼는 건지. 그래 병원에는 언제 모셔 간 거니? 아니, 내가 이렇게 아니라 병원에 가봐야겠다. ”

“ 삼촌은 치매가 아니라 그냥 계단에서 구르신 것 뿐이예요.”

“ 뭐?! 계단에서 구르셨다고? ”

 

안느의 얼굴이 의구심과 걱정으로 일그러졌다.

 

“ ....안느 아줌마. 뱅상 삼촌은 치매가 아니시구요. 그냥 저 보러 오시다가 계단에서 구르셨어요. 치료는 잘 됐어요. ”

“ 뭐? 치매가 아니셔? ”

“ 네. 전혀 아니예요.”

“ 그래? 그럼 왜 그렇게 이상해지신거지? ”

 

노엘 로즈는 그녀를 잡아 일으키며 화제를 전환했다.

 

“ 그보다 병원에 가서 삼촌을 만나보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

“ 아이구, 그렇지. 병원에 가봐야겠다. ”

 

안느를 데리고 뱅상의 집을 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5분이었지만, 노엘 로즈에게는 그 시간이 마치 5 시간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