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움직이지 말아요. 상처가 벌어져요. ”

“ 으윽- 당신은- ”

 

소독약은 생각보다 독했고, 제롬은 자기도 몰래 신음을 질렸다.

 

“ 지금 뭘 하는 거요- ”

“ 뭘 하긴. 치료 중이죠. ”

“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이거- ! ”

 

제롬의 손와 발은 밧줄에 묶인 채 침대에 묶여 있었다. 4개의 침대 다리에 고정된 제롬의 몰골은 한 마디로 해부실의 개구리 같았다. 더욱이 그의 상체는 상처의 치료로 인해 벗겨진 상태였다.

 

“ 지금 뭐하는 거요- 노엘 로즈- ”

 

제롬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힌 채 으르렁거렸다.

 

“ 어, 내 이름을 기억하네.”

 

노엘 로즈는 반갑게 웃으며 재빨리 소독을 끝내고 붕대를 꺼내 들었다.

 

“ 이거 풀어요- 윽- ”

“ 미안한데, 몰핀을 가져오지 못했어요. 좀 아플 거예요. ”

“ 상관없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요- ”

“ 상처 위치가 간 바로 아래라서 치료 중에 움직이면 곤란해요.”

“ 안 움직일테니 풀어요- ”

“ 글쎄.... ”

“ 글쎄라니- ”

 

어느새 치료를 다 마친 노엘 로즈는 팔짱을 낀 채 제롬은 내려다보며 말했다.

 

“ 어제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내 목에 칼을 들이댔던 거 기억해요? ”

“ ...그건, ”

“ 보자 마자 날 죽이려 했던 남자를 막 풀어놓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

“ 그건 당신이 누군지 몰라서 그런 거요.”

“ 모르는 사람에게는 칼부터 들이대고 보나 보죠? ”

“ ... ”

“ 정체가 뭐죠? ”

“ .... ”

“ 왜 총에 맞은 채 여기 숨어 있었던 거죠? ”

“ ... ”

“ 유태인이죠? 당신. ”

 

순간 제롬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 역시 그래서 독일군에게 쫓기고 있군요. 여긴 얼마나 있었죠?”

“ .... 다 말할 테니 이거 좀 풀어요. ”

 

제롬의 목소리가 낮고 부드럽게 울렸다. 묘하게 설득력 있는 목소리였다.

 

“ .... 알았어요. ”

 

노엘 로즈는 제롬의 손과 발에 묶어 놓은 밧줄을 풀었다. 제롬은 애써 일어나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금 총상을 치료받은 사람답지 않게 의연한 태도였지만 그의 얼굴은 병색이 완연했다.

 

오랜 시간 숨어 지내느라 창백해진 제롬의 피부는 원래는 좀 더 건강한 빛이었을 것일 같았고, 길고 덥수룩하게 자란 그의 검은 곱슬머리는 좀 더 짧고 단정했을 것이다. 탄탄하고 근육질인 그의 몸에 이미 많은 상처가 있는 걸로 봐서 어쩌면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닐 지도 몰랐다.

‘ 전쟁 전의 제롬은 어땠을까. ’

 

노엘로즈는 제롬의 원래 모습이 궁금해졌다.

 

“ 그런데 교수님은 지금 어디 계신 겁니까? ”

 

제롬의 목소리에는 뱅상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이 묻어났다

 

“ 병원이요. 갈비뼈 골절이세요.”

“ 네? ”

“ 날 만나러 오다가 계단에서 구르셨어요. 뭐가 그렇게 급하셨는지.. ”

“ ...나 때문이군요. 교수님을 위험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제롬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 수술은 잘 됐으니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그보다 당신 유태인이죠? ”

 

제롬의 고개는 묵직하게 끄덕여졌다.

 

“ 역시... 독일군에게 맞은 건가요? 그 총상? ”

“ ...네. ”

“ 여긴 얼마나 있었죠? ”

“ 세 달입니다. ”

“ ...세 달.. ”

 

역시 노엘로즈가 짐작한 대로였다.

 

‘ 너무 위험해. 안 그래도 삼촌은 나치라면 치를 떠시는 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이런 남자까지 숨겨 줬다는 걸 알면 바로 독일군에게 끌려 가실거야. 수용소에 보내지겠지. 어쩌면 처형을 당할지도 몰라. 뱅상 삼촌을 위험한 상황에 그냥 둘 수는 없어 ’

 

“ 걱정 하지 말아요. 절대로 교수님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요.”

 

마치 노엘로즈의 마음속이라도 읽은 듯 제롬이 말했다.

 

“ 이 삼일 안에 여기서 나가겠습니다. ”

“ 나간다고요? 그치만.. 그 총상이 나으려면... ”

 

말하다 말고 노엘 로즈는 입을 닫았다. 미안하지만 뱅상 삼촌이 더 중요했다.

 

“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요.”

“ .. 미안해요. ”

“ 아뇨.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이잖소. 노엘 로즈.”

 

제롬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 갈께요.... 내일 올께요. 참- ”

 

노엘 로즈는 가방을 뒤져서 작은 봉투를 하나 제롬에게 내밀었다.

 

“ 항생제와 해열제예요. 식후에 꼭 먹도록 해요.”

 

노엘 로즈는 죄책감으로 제롬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여기서 나가면 제롬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노엘 로즈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 고맙소 ”

“ 몸 상태는 어때요? ”

 

노엘 로즈는 제롬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체온을 체크하며 물었다.

 

“ 괜찮소. ”

“ 약 먹는 거 잊지 말아요. ”

“ 노엘 로즈, 당신 애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 네? 왜, 왜, 갑, 갑자기 무슨 말이예요? ”

“ 당신이랑 사귀는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갑자기 궁금해서...”

 

제롬의 표정은 뜻밖에 진지했다.

 

“ 정말 엉뚱한 사람이군요- 당신이란 남자는- ”

“ 내 이름은 제롬이라고 여러 번 얘기한 것 같은데요. ”

“ 그래요. 제롬- 제롬이었죠. ”

 

노엘 로즈는 당황하여 말까지 더듬었다.

 

“ 만난 지 오래됐나요? 그 남자와? ”

“ 댁하고 그게 무슨 상관,”

“ 제롬입니다. ”

“ 그래요. 제롬- 제롬이랑 상관없잖아요- ”

“ 음, 그거야 그렇지만 말해주면 안됩니까. ”

“ 애인 같은 거 없어요. 별로 만들고 싶지도 않고.”

“ 왜죠? ”

“ 지금은 전쟁 중이잖아요. 연애는 사치예요. ”

“ ....그건 그렇지요. ”

 

노엘 로즈는 자기도 모르게 붉어진 얼굴을 감싸 쥐었다. 왜 자신이 이런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지, 왜 또 이렇게 얼굴이 달아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