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님- ”

“ 당장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

“ 아니, 기껏 걱정돼서 병문안 온 동생한테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두 사람이 서 있는 근처 병실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 네 놈 시커먼 속셈을 내가 모를 거 같으냐- 꺼져- 이 개자식아- ”

“ 형님- 하나 밖에 없는 동생에게 이러시는 거 아닙니다- ”

“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두 번 다시 오지 마! ”

 

곧 병실 문이 열리며 땅딸막한 중년의 사내 하나가 튀어 나왔다.

 

“ 쳇, 혼자 애국자인 척은 다 하구 있네. ”

 

사내는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덕분에 욕심 사나워 보이는 그의 얼굴은 더욱 못나 보였다. 사내는 쟈크 베아르라는 인물로 뱅상의 동생이자 노엘 로즈의 막내 삼촌이었다. 노엘 로즈는 그제서야 자크가 나온 병실이 뱅상의 입원실이었고 방금 전의 싸움의 주인공들이 쟈크와 뱅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평소에도 그닥 반갑지 않은 삼촌이었지만 독일군 장교와 함께 있는 지금은 더욱 만나고 싶지 않았다.

 

노엘 로즈는 자기도 모르게 당황해서 슈나이더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 이제 그만 가시죠. 너무 지체했네요, 하하- ”

“ 그런가요? ”

“ 윗층을 보여드리죠. ”

 

노엘 로즈는 허둥지둥 슈나이더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 하지만 슈나이너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런 노엘 로즈를 흥미롭다는 듯 지켜볼 뿐이었다.

 

“ 아니, 노엘 로즈? 아니 너 노엘 로즈 아니냐. ”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려는 노엘 로즈의 뒤쪽에서 쟈크가 소리쳤다.

 

“ ....쟈크 삼촌. 안녕하세요. ”

 

마지못해 인사를 하며 노엘 로즈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아, 참 그렇지, 여기가 네가 다니는 병원이었지. 그래, 그동안 잘 지냈니? 오랜만이다. ”

“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

“ 어, 원장님 봬러 왔다가 뱅상형이 입원했다길래. 얼굴 좀 보려 왔더니,”

“ 아,,그렇군요, ”

“ 뱅상 형님 저 성질 머리는... 도무지...쯧 ”

 

쟈크는 젊은 시절부터 프랑스 내의 유태인들와 외국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온 지독한 국수주의자였다. 프랑스인인 자신이 못사는 것은 유태인이 지나치게 부을 독점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해왔던 쟈크는 파리에서 유명한 친독일파였다.

 

사업을 한다며 독일에 건너갔던 쟈크가 프랑스로 다시 돌아온 것은 바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직 후였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친독일 의용대에 들어가 유태인 검거에 앞장섰고 그 일로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 쟈크와 원장인 닥터 놀로는 죽이 잘 맞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뱅상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싸웠다. 쟈크 역시 자신의 형인 뱅상을 어리석은 노인네 취급이나 하던 차였다.

 

“ 아니, 슈나이더 대령님, 아니십니까? ”

“ 무슈 베아르.”

 

쟈크는 노엘 로즈의 뒤에 서 있는 슈나이더를 발견하고 반색을 했다.

 

“ 아이구, 이런데서 보니 더 반갑네요. ”

 

친독일 의용대인 쟈크와 독일군 방첩부 장교인 슈나이더가 서로를 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엘 로즈는 지나치게 함박웃음을 띈 쟈크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울 비굴하게 느껴져서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 노엘 로즈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쟈크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 아이구~~~ 그런데 우리 노엘 로즈랑 어떻게 아는 사이신가요? 제가 제일 아끼는 조카인데.. ”

“ 그러시군요. ”

 

쟈크는 두 사람이 사귀기라도 했으면 하는 얼굴이었다.

 

노엘 로즈는 그런 쟈크와 슈나이더 대령에게 선을 긋듯 냉정하게 말했다.

 

“ 단순히 병원 안내를 해드린 것, 그 뿐이예요. ”

“ 훌륭한 조카 분입니다. ”

 

노엘 로즈는 동그란 눈으로 슈나이더를 돌아봤다.

‘ 뭐? 웬 훌륭? ’

 

“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대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잘 알고 있더군요. ”

“ 아이구- 이거 참, 대령님이 이렇게 제 조카를 좋게 봐주시다니, 황송해서. ”

“ 전 프랑스인의 문화나 언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프랑스인 역시 대단히 좋아하죠.”

 

슈나이더는 노엘 로즈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노엘 로즈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야하나 망설이다 그만뒀다.

하지만 쟈크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 그럼요. 그럼요. 이제 독일과 프랑스는 한 나라나 다를 바 없죠. ”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뭐, 한 나라? 둘 다 미쳤군. 이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해보시지. ’

 

노엘 로즈는 어이없는 비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 그럼 다음 주 목요일 어떻소? 베아르 선생? ”

 

슈나이더의 질문에 노엘 로즈는 정신이 돌아왔다.

 

“ 네? 뭐가요? ”

“ 식사 말이다. 노엘 로즈. 대령님께서 너랑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잖니. ”

“ 저녁식사요? ”

 

황당함에 말문이 막힌 노엘 로즈와 달리 쟈크는 춤이라도 출 듯한 얼굴이었다.

 

“ 죄송하지만 저는 병원 일이 많아서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두 분이 드세요. ”

 

노엘 로즈는 한껏 미안한 척 미소를 지은 채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고 했다.

 

“ 내가 독일군이라서 싫으신가요, 노엘 로즈 베아르 선생? ”

 

슈나이더가 진지하게 바라봤다. 노엘 로즈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 그, 그럴리가요. 저야 영광이지만, ”

“ 그렇다면 내 초대를 거절하지 마시오. ”

 

단호하게 말하는 슈나이더의 얼굴을 노엘 로즈는 주먹으로 날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독일군 장교니까.

 

“ 다음 주 목요일 세 사람 예약해놓겠소. ”

 

슈나이더는 노엘 로즈에게 못 박듯이 말했다.

 

노엘 로즈는 할 수 없이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

 

오늘은 정말이지 재수가 없다고 노엘 로즈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