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로즈를 제압한 채 그녀를 꿰뚫을 듯 노려보는 남자의 눈은 어둡고 거칠었다. 남자의 길게 자란 머리는 산발이었고, 얼굴은 검은 수염으로 뒤덮여 더욱 험상궂어 보였다.

 

“ 누구냐-! ”

“ .... ”

노엘 로즈는 두려움에 말을 더듬었다.

“ ....난,, ”

“ 넌 누구야- ”

 

문뜩 노엘 로즈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의 검은 깊은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갑자기 이 거칠기 짝이 없는 야수 같은 남자가 자신을 막무가내로 해칠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은 갑자기 어디서 나오는 거지.

뭘 보고? 이 남자가 잘 생겼기 때문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보다 삼촌이 날 여기 보낸 건 이 남자 때문이겠지? ’

 

“ ... ”

“ 뭘 그렇게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야!

남자는 대꾸도 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노엘 로즈에게 윽박 질렀다.

“ 알았어. 알았다구. 오케이- 뭐부터 알고 싶은데? ”

노엘 로즈의 겁 없는 대답에 남자는 순간 눈빛이 흔들렸지만 여전히 노엘 로즈를 누르는 힘에는 변화가 없었다.

 

" 넌 누구지? 베아르 교수님은 ? "

" 난 조카인 노엘 로즈 베아르야. "

" 노엘 로즈? 네가 그 노엘? "

남자는 당황했다.

 

“ 날 알고 있네. ”

“ ... 뱅상 교수님은 어디 계시지? ”

“ 뱅상 삼촌은 계단에서 구르셔서 병원에 계셔”

“ 뭐? ”

“ 이제 이 칼 좀 치우지 그래. "

 

하지만 남자의 의심은 다 사라지지 않은 듯 노엘 로즈 위에 올라탄 자세를 고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노엘 로즈의 양 옆구리를 꽉 조이고 있는 그의 단단한 허벅지가 약간 느슨해진 것 뿐이었다.

“ 네가 교수님 조카라는 걸 내가 어떻게 믿지? "

“ 정 못 믿겠으면 내 지갑 안에 신분증이 있으니까 꺼내 보던가.”

 

망설이던 남자는 노엘 로즈의 외투 속으로 손을 넣어 지갑을 꺼내 살폈다. 덕분에 노엘 로즈의 목은 자유로워졌다.

 

" 아무래도 널 돌보라고 삼촌이 날 보내신 것 같군"

" 뭐? "

노엘 로즈는 남자의 옆구리를 꽉 움켜쥐었다.

" 우윽-!"

그의 얼굴은 금새 새하얘지며 고통에 차서 옆으로 꼬꾸라졌다.

 

노엘 로즈는 그 틈에 남자가 떨어뜨린 칼을 재빨리 주워 창 밖으로 던져 버렸다. 칼은 정원 한 켠 어딘가에 가서 쳐 박혔다.

“ 자세가 좀 이상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셔츠에 묻어있던 건 피가 맞네. ”

" 너 이 ...! 윽-! "

 

고통으로 바닥에서 웅크린 남자를 향해 노엘 로즈는 씩 미소 지은 채 말했다. 당당하게 자신을 올라타던 남자가 고통에 질려 쓰려지는 꼴이 재밌게 느껴졌다.

“ 심하게 다친 모양이군. ”

“ 으, 윽- ”

 

남자는 벌떡 일어나려다가 옆구리를 잡으며 도로 주저앉아 버렸다. 극심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은 대개 흉한 법인데, 이 남자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멋진 연기를 하는 연극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엘 로즈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상처를 보고 싶었다.

 

" 지금 뭐하는 거야! "

노엘 로즈는 다짜고짜 남자의 셔츠를 걷어 올렸다.

“ 잠깐만, 좀 가만 있어 봐.”

“ 잠깐...! 이 봐 ! ”

 

당황한 남자는 얼굴까지 시뻘개지며 노엘 로즈의 손을 밀어냈다. 노엘 로즈는 남자를 보며, 좀 전의 그 거칠던 남자가 맞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뭘 하긴, 상처를 봐야 치료를 하던지 할 거 아니야. 가만히 좀 있으라구."

 

노엘 로즈는 남자의 옆구리를 살펴봤다. 엉성하게 둘러진 붕대 위로 핏물과 함께 누렇게 고름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의 상처는 제대로 아물지 못한 채 곪아가고 있는 것이 뻔했다.

" 엉망이군."

" 당신 의사라고... 들었는데... 진짜가 맞나보군."

 

남자는 고통에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네. 난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삼촌이랑 무슨 관계지? ”

“ .... ”

남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 자, 일단 전부 벗어 봐. ”

“ 뭐?!”

남자는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면 뒤로 물러났다. 노엘 로즈는 그런 남자가 귀엽게 느껴졌다. 미소를 지은 채 노엘 로즈는 말을 이어갔다.

" 그렇게 일일이 당황할 거 없잖아. 붕대를 풀어 봐야 상처를 볼 거 아냐, 그럴려면 그 셔츠를 먼저 벗어줘야지. "

" ...난. 괜찮아."

 

남자는 애써 숨을 고르며 대꾸했다. 노엘 로즈는 쑥스러워하는 그를 골리고 싶어졌다.

" 힘들면 내가 도와줄까? "

노엘 로즈는 남자의 셔츠로 손을 뻗어 당장이라도 벗길 듯한 포즈를 취했다. 물론 상대의 표정을 보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 됐어. 내가 해- "

“ 그러시던가요. ”

 

남자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며 간신히 셔츠를 벗었다. 붕대도 스스로 풀려고 했지만 쉽지 않은 듯 숨을 몰아쉬었다.

“ 이 봐요. 너무 무리하지 말라구요. ”

“ .... 음...윽... ”

“ 붕대는 내가 풀게요. ”

남자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노엘 로즈는 조심스레 남자의 붕대를 풀었다. 드러난 상처는 예상보다 훨씬 더 상태가 안 좋았다. 심한 염증으로 퉁퉁 부은 환부는 시뻘겋다 못해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동안 통증이 상당했을 것이다. 노엘 로즈는 남자의 환부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촉진을 하며 물었다.

 

" 언제 다친 거죠? "

" 일주일 전에...아직 총알을 제거 안 했어."

“ 뭐? 총알? ”

그랬다. 남자의 부상은 총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