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한 이유는 바로 총상이기 때문이었다.

‘ 총상이라니, 이 남자 역시 레지스탕스인가. ’

노엘 로즈는 점점 더 걱정이 커졌다.

 

“ 총알을 제거하지 않았단 말이죠? ”

“ 총알을 제거하면 출혈이 심해져. ”

 

남자는 고통에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 그걸 아는군요. 의사는 아닌 거 같은데. 총상이 처음이 아닌가 봐요. ”

“ ... ”

 

남자의 입술은 굳게 다물어졌다.

노엘로즈는 그런 남자를 보며 분명 경험으로 알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건 잘 한 거예요. 총알은 어떻게 맞은 거죠? ”

“ .... 나중에. 총알을 제거하고 나면 말하지.”

 

남자는 고통으로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 ...좋아요. 대답은 나중에 듣죠. ”

“ .....윽...”

 

촉진을 하면서 노엘 로즈는 계속 물었다.

 

“ 근데 이름이 뭐예요? ”

" .... "

" 뭐야, 설마 아직도 내가 의심스러워요? "

 

남자는 망설이다 대답했다

 

" 제롬. "

" 제롬, 당신이랑 잘 어울리네. 그런데 삼촌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죠? "

" ... "

 

문뜩 노엘 로즈는 남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두 사람의 시선은 얽혔고 순간 묘한 긴장감에 노엘 로즈의 심장은 살짝 뛰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제롬이었다. 노엘 로즈는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 .....뱅상 교수님은 내 대학교 때 은사님이시고. “

" 역시 그럴 거 같긴 했어요. "

" 으음-! "

 

노엘 로즈의 가벼운 촉진에도 제롬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고통이 심한지 제롬은 곧 창백해지며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통증이 심했을 텐데 일주일을 어떻게 참았죠?"

"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

“ 그나마 다행이군요. 패혈증에 걸리지 않아서.”

“ ..패혈증?”

“ 그래요, 심하면 의식불명에 빠지거나 죽을 수도 있어. ”

“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

 

고통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상태에서도 이를 악물고 괜찮다고 말하는 제롬을 보니 노엘 로즈은 괜히 놀려주고 싶어졌다.

 

" 여기는? "

" 겨, 견,,딜만해...."

" 여기는 좀 아플 텐데 "

" 괜...찮아..."

" 여기도 ? "

" ..... "

 

자존심이 센 건지, 인내심이 강한 건지 대단하다고 혀를 끌끌 차며, 대답 없는 제롬을 돌아본 노엘 로즈는 그가 그대로 기절한 것을 깨달았다.

 

" 이 봐! 정신 차려! 이봐! 제롬! 제롬! "

 

의식불명 상태인 제롬의 몸은 불덩이였다.

 

정신을 잃은 채 서재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제롬을 보며 노엘 로즈는 갈등했다.

 

‘이 남자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하지만 정체도 모르는데 함부로 데려갈 수는 없다. 만약 이 남자가 레지스탕스라면 병원에 데려갔다가 오히려 체포되어 총살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게다가 이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삼촌도 연루되어 있으니 절대 병원에 데려 갈 수는 없었다.

 

정체불명의 이 남자보다 뱅상 삼촌을 지키는 일이 훨씬 중요했다.

순간 제롬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의 이마를 짚어봤다. 열이 높았다.

 

‘ 이대로 라면 곧 그는 ....죽겠지. ’

 

제롬을 바라보며 갈등하던 노엘 로즈는 코트를 벗어 덮어 주고 일어섰다.

 

‘ 어쩔 수 없다 . 미안하지만,’

 

제롬은 꺼져가는 의식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점점 더 고통스러워지기만 했다.

옆구리의 상처는 불덩이같이 뜨거워지고 점점 커지는 듯 느껴졌다.

 

그것은 어느 새 온 몸을 태워버릴 것 마냥 타올랐다 갑자기 순식간에 얼음물 속에 들어간 듯 추워졌다. 덜덜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별로 소용없었다.

 

' 추워.....추워...아... 누가.....도와..줘... ...'

 

그 때, 누군가 제롬의 몸 위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제롬의 몸 위로 덮어졌다.

 

" 따뜻해.... '

 

제롬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것을 손끝으로 느끼며 죽은 듯 심연으로 떨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