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노엘 로즈는 퇴근 후 바로 뱅상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들어가기 전 불안한 마음으로 자기도 모르게 등 뒤를 돌아봤다.

 

조용한 주택가에는 별 다른 인기척이 없었지만 누군가 미행이라도 한 듯 불안하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 제롬을 여기에 둘 수는 없어. 너무 위험해. ’

 

집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노엘 로즈는 불안한 마음으로 서재로 향했다.

 

“ 제롬? 제롬? ”

 

지난 번 제롬이 뛰쳐나왔던 서재의 은신처로 들어가는 책장문이 열려있었고, 늦은 오후의 햇살이 서재의 은신처 내밀한 깊숙한 곳까지 비치고 있었지만 지금 제롬이 있어야 할 곳에는 텅 빈 채 아무도 없었다.

 

‘ 어디 갔지? 설마 가버린 걸까? 벌써? ’

 

노엘 로즈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생각했다.

 

‘ 그 몸으로 설마 간 걸까? 지금 움직이면 상처가 덧날 텐데.. ’

 

그러다 문뜩 두려운 생각이 그녀를 휘감았다.

 

‘ 설마! 누가 벌써 알아채고 연행해간 걸까?  ’

 

참을 수 없는 마음에 벌떡 일어난 노엘 로즈는 서재와 온 집안을 꼼꼼히 살폈다.

 

‘ 누가 침입한 건 아니야! 그랬다면 현관문도 열려 있었겠지! 싸운 흔적도 없어- 역시 스스로 떠난 걸까? ’

 

짧은 시간에 노엘 로즈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 왔소? ”

 

등 뒤에서 남자의 굵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으 -악-! ”

 

잔뜩 긴장한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노엘 로즈는 순간 너무 놀라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 뭘 그렇게 놀라지? ”

 

제롬은 문가에 서 있었다. 그는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말끔히 면도가 된 얼굴은 조금 창백하기는 했지만 생기가 넘쳤고, 그 때문인지 좀 더 잘 생겨보였다.

 

“ 이제 퇴근한 거요? ”

“ 당신-! ”

“ 제롬이요. 내 이름. 제롬. ”

“ 당신 도대체 지금 어딜 갔다 오는 거예요-! ”

 

제롬은 반가운 듯 노엘 로즈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제롬. 제롬이라고 불러요. 노엘 로즈. ”

“ 제롬...”

“ 그렇지, 그거요. ”

 

그의 검은 눈동자는 어제보다 좀 더 깊고 반짝거렸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안에서 기분 좋게 춤추고 있었다. 밝은 햇살 아래 미소 짓고 있는 제롬은 매력적이었다. 노엘 로즈는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남자의 말을 거부하기 힘들 거라고.

 

“ 도대체 말도 없이 지금 어딜 갔다 오는 거죠- 내가 얼마나-! ”

“ 아, 참- ”

 

제롬은 순식간에 들어 온 문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 저녁 안 했으면 노엘 로즈 당신도 같이 먹겠소? ”

 

어리둥절한 노엘 로즈에게 곧 바게트 반쪽이 날아왔다. 제롬은 어느새 서재 책상 위에 걸터앉아 우적우적 빵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노엘 로즈를 향해 와서 앉으라는 듯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 이리 와서 앉아요. ”

 

노엘 로즈는 이 상황이 어이없고 기가 막혔다.

 

“ 지금 어디 갔다 온 거죠? ”

“ 이거 사러. 하루 종일 저 속에서 굶고 있을 순 없잖소. 먹어야 빨리 낫지. 대학 때 다녔던 빵집이 아직 있더군요. ” ”

“ 그래서 혼자 독일군이 우굴거리는 파리 시내를 이걸 사겠다고 어정거리고 다녔단 말인가요? ”

“ 할 수 없잖소, 이 집엔 먹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

 

제롬이 우물거리며 먹고 있던 바게뜨를 들어 보였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노엘 로즈를 쳐다봤다.

 

“그 보다 먹어봐요. ”

“ ...도대체 제 정신이예요? ”

“ 노엘 로즈? ”

 

노엘 로즈가 화를 내던 말건 제롬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그녀의 모습을 묘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며 우걱우걱 바게트를 먹어치울 뿐이었다.

 

노엘 로즈는 그런 제롬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 잡히려고 작정한 거예요? 아예 여기서 노래라도 부르시죠- ”

“ 노엘 로즈. ”

“ 됐으니까 당장 나가요- 어떻게 말해야 됄까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네- 지금 당장 나가줘요! 이젠 몸도 완전히 나을 거 같은데- ”

“ .... ”

“ 당신같이 제멋대로인 사람 때문에 뱅상 삼촌을 위험하게 만들 순 없어요! 이놈의 바게트 들고 나가서 혼자 실컷 먹든지 말던지 해요-! ”

“ 노엘 로즈- ”

“ 남은 걱정으로 미쳐버리든 말든 신경도 안 쓰는 인간이었어- ”

 

노엘 로즈는 손에 들고 있던 바게트를 제롬에게 던져버렸다.

 

“ 탁- ”

 

바게트는 공중을 날아 제롬의 얼굴에 부딪쳤고 그대로 서재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제롬의 뺨은 붉게 달아올랐다.

 

“ ... 미안하오. 그렇게 걱정하는지 몰랐소.”

“ 됐어요. 당장 나가 줘요. ”

“... 당장 갈 곳이 없어요. 이곳에 잠시만 있게 해주면 안됩니까? ”

“ .... ”

“ 독일군에게 잡히면 난 총살당할 거요. ”

 

노엘 로즈는 제롬의 모습에 미안함으로 가슴이 저릿했지만 애써 쌀쌀맞게 말했다.

 

“ 일주일. 딱 일주일만 시간을 줄께요. 그리고 대신 밖에는 나가지 말아요. 음식은 내가 가져다 줄 테니까.”

“ ... 고맙소.”

 

노엘 로즈는 제롬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당신이 도망친 유태인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

“ 잊지 않아요. 수용소로 끌려간 부모님과 여동생도.”

 

그의 얼굴 표정은 아까와 달리 어둡고 슬퍼보였다.

 

“ 내 가족들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