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무 / 음악 평론가] 20세기 레코드의 탄생과 함께 등장한 본격적인 대중음악의 역사는 바꾸어 말하면 록앤롤의 역사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며 번영을 구가하던 미국 사회에는 새로운 사회 현상 하나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바로 틴에이저들이 부모로 부터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고 중고차 한 대를 선물 받으면서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한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번영의 파도는 서유럽과 일본에 까지 이르면서 청소년들을 겨냥하는 광고 마케팅은 거대한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게 되는데, 그 핵심은 영화와 음악 그리고 패션이었다.

반항적 이미지의 제임스 딘이 스타덤에 오르고 그가 입었던 리바이스 블루 진이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사이에 미국의 대중음악에서도 새로운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한다.

바로 록앤롤이다. 틴에이저들의 일상 혹은 반항적 욕구를 가사로 담아 낸 록앤롤은 경쾌한 리듬과 기타 리프 그리고 화려한 스테이지 액션을 종합하여 일순간 미국과 유럽 전역을 뒤덮게 된다. 소년들은 록앤롤 스타의 공연을 보며 광분했고, 소녀들은 팬티와 브래지어를 벗어 무대 위로 던져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록앤롤 스타는 백인이 아니라 흑인들이었던 것이다.

▲ Photo From Chuck Berry Official Site

리틀 리챠드는 피아노를 연주하다 말고 그 위에 올라 광란하였고, 척 베리는 오리 걸음을 하며 기타를 미친듯이 연주하기 시작했다. 록앤롤의 창조주들인 두 흑인 스타들은 곧바로 미 중산층 백인 아버지들의 격노와 마주해야만 했다. FBI 국장 후버는 중산층 백인 유권자들의 분노를 지나칠 수가 없었고, 눈치 빠른 전직 군인 출신의 톰 파커는 후버를 만나 모종의 제안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흑인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백인 트러커 엘비스 프레슬리다.

리틀 리챠드는 스타가 되기 이전의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가 그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올랐고, 지미 헨드릭스는 아예 백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다. 폴 맥카트니의 창법과 존 레논의 작곡 스타일은 리틀 리챠드의 지도와 훈수가 큰 역할을 했으며, 척 베리의 기타 리프는 롤링 스톤즈의 'Satisfaction'을 탄생시킨다.

이 두 흑인 뮤지션들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바하와 모차르트였으면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엘비스와 비틀즈에게 록앤롤의 황제 자리를 내주고 말았으며, 이후 디스코의 제왕은 존 트라볼타와 비지스, 힙합의 황태자는 에미넴이 되는 것으로 역사는 반복된다.

해리 벨라폰테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밥 딜런...백인 애송이가 인생의 고뇌를 이야기한다고...놀고 있네.."

( ** 라이브엔은 2017년 3월 부터 MBC 방송작가, 싸이더스 iHQ 영화제작 본부장을 거쳐 현재는 음악 평론가 겸 기자로 활동 중인 이상무 씨의 케이팝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