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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칼럼] 日 기자의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 (靖国神社) 탐방 취재 후기

[토시키 아오야마]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 종전부터 정확하게 75년이 지나는 해여서 "야스쿠니 신사"를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도쿄도 치요다 구 쿠단 키타에 있는 신사로서, 바로 앞에는 니혼 부도칸이 자리하고 있다. 메이지 천황의 뜻에 따라 세워졌으며, 일본 국가를 위해 전쟁에서 순직한 사람의 영혼(영령) 246만 6천여 위(位)를 모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신사이다. 아울러 일본 전국에 있는 호국신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오후 3시경 폭염에도 불구하고 현지에 도착하자 엄청난 인파가 보이기 시작했다. 참배하려면 줄을 서야 하는데 경찰 측에서는 "90분 대기입니다"라고 메가폰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는 경찰관에게 물어보니, 피크는 12시경이었으며, 2시간을 대기하고, 줄이 뒤까지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디즈니 랜드의 어트랙션 이상의 인기에 아연실색하였고, 목이 막힐듯한 더위 속에서, 별 수 없이 내내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전후 75년 고비의 해로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부 장관,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에토 세이이치 영토문제 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까지 4명의 각료가 이곳을 참배했다. 이는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후 가장 많은 각료 수이며, 그 외 다수의 자민당 보수계 의원들의 참배가 있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은 기자단에게 「국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계속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각료들의 참배는 4년 만이지만 그는 "각료든 아니든 매번 참배를 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은 평화에 대한 생각, 부전의 맹세는 한 의원이건 장관이건 다르지 않다. 나라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치른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와 애도의 정성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올해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지사가 등장하자 이시하라 콜이 일어나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정통화되고 있다. 참배 후 박수로 맞이한 참배자들을 향해 이시하라는 "당연하지만, 천황이 참배해 주셨으면 합니다. 왜 참배해 주실 수 없습니까?"라고 호소했다.

이시하라는 야스쿠니 신사에 가까운 니혼 부도칸에서 전국 전몰자 추도식이 열리고 있음을 밝히고는 "한발 뻗고, 일왕과 총리는 왜 참배하지 않는가? 왜 사양하는 것인가?"라고 소리를 높였고, 이에 참배자등으로부터 "옳소"등의 회답이 높아졌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246만 6천의 영령이 잠들어 있지만 일본인만이 아니다.

일본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한 약 21,000명의 조선인 일본군도 모셔져 있다. 아울러 이와 비슷한 수의 '대만인 일본군'도 모셔져 있다. 조선인 일본군을 포함한 약 2만 1000명은 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인과 함께 연합군에 대적하여 싸웠다.

홍사익

그중에는 장교까지 되었던 홍사익과 김석원, 이왕조의 후손으로 한일강제병합 후 준황족으로 분류되었던 이왕가의 이항 전하 등과 같이 장군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도 있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한반도에서 영토를 수비했던 영웅들로 인정받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놓칠 수 없는 장소로는 유슈칸이 있다.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 병설된 동사의 제신 관련 자료를 모은 박물관으로서, 에도 막부 말기 유신 시대의 동란에서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에 이르는 전사자, 국사 수난자를 제신으로 삼는 야스쿠니 신사의 시설이며, 전몰자와 군사 관계의 자료를 소장 및 전시하고 있다.

상당히 볼만한 기록 가치가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박물관 중 하나이기 때문에 관람을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울 지하철 4호선과 6호선 삼각지역 인근에 있는 6.25 '전쟁 기념관'과 함께 둘러보면 전쟁의 역사를 비교할 수 있어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

나는 서울에서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의 모든 것을 전하는 한국전쟁 기념관을 10번 이상 관람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은 3년간의 전투에서 150만명을 파병하여 36,940명이 전사하고 3,737명이 실종되었으며, 사고사까지 포함하면 총 5만 4,000명의 고귀한 미국인의 목숨이 희생되었다.

한국전쟁 희생자 수는 남북한 합해서 400만 명으로 당시 총인구의 20%에 해당한다. 결국 국민 5명 중 1명이 전사한 셈이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 희생자는 300만 명으로 총 인구의 4%이다. 한국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고 대단한 전투였는지 알 수 있는 수치이다.

영령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지켜져 온 한일 양국의 민주주의와 자유사회.

희생된 영령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근현대사에서 배우고 교훈으로 삼는 것은 국민의 의무처럼 여겨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8月15日。第二次世界大戦終戦からちょうど75年が経つ節目の年なので「靖国神社」を取材することにした

靖国神社は、東京都千代田区九段北にある神社で日本武道館が目と鼻の先にある。明治天皇の意向によって建てられ、日本国家のために戦争で殉死した人の霊(英霊)246万6千余柱を祀る日本を代表する神社である。全国にある護国神社と深い関わりがある。

午後3時頃、猛暑にも関わらず、現地に到着するとものすごい人・人・人である。参拝するのに列に並ばなくてはならないが、警察が「90分待ちです」とメガホンでアナウンスしている。

近くにいる警察官に聞いたが、ピークは12時頃で、2時間待ちで、列が後ろまではみ出していたそうだ。ディズニーランドのアトラクション以上の人気にア然とし、猛著の中、立ち尽くしてしまった。

戦後75年節目の年ということで、小泉進次郎環境相、萩生田光一文部科学相、衛藤晟一領土問題担当相、高市早苗総務相計4人の閣僚が同地を参拝した。
第2次安倍内閣発足後、最多の閣僚数となった。ほか多数の自民党保守系議員の参拝があった。

高市早苗総務相は記者団に「国家国民を守るために命をささげた方に感謝の思いを伝えるというのは、一人の日本人として続けていきたい」と述べた。閣僚の参拝は4年ぶりだが、高市氏は「閣僚であれ、そうでなくとも、毎回お参りをしている」と述べた。

小泉純一郎前首相の息子の小泉進次郎環境相は「平和に対する思い、不戦の誓いは一議員であろうと大臣であろうと変わらない。国のために尊い犠牲を払った人に心からの敬意と哀悼の誠をささげることは当然のことだ」とコメントした。

元東京都知事の石原慎太郎氏は今年も靖国神社を参拝した。石原慎太郎氏が登場すると石原コールが巻き起こるのが靖国神社で定番化している。参拝後、拍手で迎えた参拝者らに向けて「首相は当たり前だけど、天皇陛下に参拝していただきたい。なぜ参拝してもらえないのか」と訴えた。

石原氏は、靖国神社に近い日本武道館で全国戦没者追悼式が営まれていることに触れ「一足伸ばして、天皇陛下と首相はなぜ参拝しないのか。何で遠慮してるんだ」と主張すると、参拝者らから「その通りだ」などの声があがった。\

靖国神社は、246万6千の英霊が眠っているが日本人だけではない。

日本軍に志願兵として入隊した約21000人の「朝鮮人日本兵」も祀られている。同じくらいの数の「台湾人日本兵」も祀られている。

朝鮮人日本兵を含む約2万1000人は主に第二次世界大戦において、日本人と共に連合軍と戦った。

中には将校まで上り詰め、洪思翊(ホン・サイク)や金錫源(キム・ソグォン)、李王朝の末裔で日韓併合後は準皇族とされた李王家の李鍝殿下などのように、将軍の地位についていた人物もいたほどで、その多くは朝鮮半島におり、領土の守備にあたっていた英雄であった。

靖国神社で見逃せない場所として遊就館(ゆうしゅうかん)がある。靖国神社境内に併設された同社の祭神ゆかりの資料を集めた宝物館で、幕末維新期の動乱から大東亜戦争(太平洋戦争)に至る戦没者、国事殉難者を祭神とする靖国神社の施設として、戦没者や軍事関係の資料を収蔵・展示している。

非常に見ごたえがある日本を代表する博物館のひとつなので、観覧をオススメしたい。
第二次世界大戦後、朝鮮戦争がすぐ始まったわけだが、ソウル地下鉄4・6号線三角地(サムガッチ)駅近くにある「戦争記念館」と併せて見学すると、戦争の歴史が比較でき、非常に有意義である。

ソウルにある「戦争記念館」は、朝鮮半島でおきた戦争の全てを伝える韓国戦争記念館で10回以上見学した。朝鮮戦争で、アメリカ軍は3年間の戦いで150万人を派兵して、36,940人が戦死し、3,737人が失踪、事故死まで入れれば総勢5万4000人の尊いアメリカ人の命が犠牲になった。

朝鮮戦争の犠牲者の数は、南北朝鮮合わせて400万人、総人口の20%にあたる。つまり、国民の5人に1人が戦死した計算になる。一方、第二次世界大戦の日本の犠牲者は300万人で、総人口の4%。朝鮮戦争がいかに凄まじい戦闘だったかがわかる。

英霊たちの犠牲によって、かろうじて守られてきた日韓両国の「民主主義」と「自由社会」。
犠牲となった英霊たちを決して忘れてはならず、近現代史から学び、教訓として生かすのは国民の義務のように思えてならない。

ToshikiAoyama 기자 (해외)  toshikiaoyam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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