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대기업 스크린 독과점, 장악을 넘어서 영화계 ‘슈퍼 갑(甲)’으로

17일 방송되는 MBC ‘PD수첩’에서는 대기업이 장악한 영화산업의 현실을 되짚어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2014년, 영화 관객 수 2억 1506만 명! “국제시장”과 “명량”, “변호인” 등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총 11편에 이른다. 지금 한국 영화 시장은 전성기를 맞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의 영화산업은 정말 성장하고 있는 걸까? ‘PD수첩’ 제작진이 만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영화관들이 자기들 입맛에 안 맞거나 또는 자기들이 투자한 돈이 아니면 안 틀어버리는 그런, 이건 정말 심각한 횡포고 이렇게 되면 영화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재벌 대기업이 투자하는 딱 틀에 맞춰진 영화만 남게 되는 거거든요.”(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

영화산업 전체를 흔드는 재벌 대기업의 횡포는 무엇일까? ‘PD수첩’이 취재했다.

▲ 'PD수첩' 예고화면 캡처
영화계의 지긋지긋한 그림자, 스크린 독과점

지난 2월 11일 저녁,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을 위한 상영회가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마련하고, 영화에 출연한 김혜자가 참석한 특별한 자리였다. 또한, 일반인들까지도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대관을 하고 있다. 현재 “개훔방”이 상영되는 중임에도 사람들이 별도 대관을 하는 이유는 상영관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개훔방” 전국 205개 스크린으로 시작(전국 체인영화관 5,061개 스크린의 4.1%), 2월 15일 현재 기준 34개 스크린(전국 체인영화관 5,312개 스크린의 0.6%)에서 상영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국제시장”이 개봉일 당시 931개 스크린으로 출발한 것과 대조적이다. 대표적인 천만 영화 “명량”은 전국 1,159개 스크린으로 시작, 개봉 첫 주말에는 전국 1,587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더구나 “개훔방” 측은 상영관 배정 외에도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보통 계열사 및 자사가 배급하는 영화는 2주 전에 예매를 열어주지만 “개훔방”의 경우 개봉 5일 전인 12월 26일에 예매가 시작되었다는 것. 늦은 예매 오픈으로 예매율이 낮아졌기 때문에 상영관 배정도 적게 받았다고 “개훔방” 측은 말한다.

그런데 “개훔방”보다 더 심한 대우를 받았다는 영화가 있다. 바로 유지태 주연의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이하 “더 테너”)다. 갑상선 암을 이겨낸 성악가 배재철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유지태가 성악까지 직접 배워가며 여러 해를 준비한 영화였다.

순제작비만 75억이 들었다. 시사 때부터 호평을 받았던 “더 테너”는 “개훔방”과 같은 날인 2014년 12월 31일 개봉했다. 첫날 185개 스크린을 배정 받으며 시작했지만 개봉 2주차인 1월 7일에는 상영관이 23개로 줄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월 8일, 전국의 CGV 영화관에서는 더 이상 “더 테너”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 두 영화의 약세가 극장에서 대기업들이 자사가 투자·배급한 영화에 스크린을 많이 배정한 이른바 ‘스크린 독과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PD수첩’ 제작진이 어렵게 만난 한 제작사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성수기에는) 아예 들어갈 수가 없죠. 들어가도 시체 돼요. 스크린 수를 자기(대기업)들이 다 장악해버리니까. (...) 왜냐면 유통과 마케팅으로 성공하는 걸 배웠거든요.”(영화 제작사 관계자)

스크린 독과점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CJ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어떻게 스크린 전반을 장악한 걸까? ‘PD수첩’에서는 이 영화계의 그림자를 파헤쳤다.

스크린 장악을 넘어서 영화계 ‘슈퍼 갑(甲)’으로

대기업의 영향력은 단순히 스크린 장악에서 끝나지 않았다. 영화 제작 단계부터 투자, 배급, 극장, 부가판권 시장까지 모든 과정을 독식하고 있었다. CJ가 제작과 배급에 투자한 “사요나라 이츠카”라는 한일 합작 영화 관계자는 영화를 제작했던 2010년 당시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창업투자회사(이하 창투사)에서 “사요나라 이츠카” 제작사인 ‘투베어픽쳐스’ 계좌로 입금한 48억 원의 돈이 다시 CJ 계좌로 들어간 것이다. 투베어픽쳐스의 주장에 따르면 CJ는 은행으로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돈을 CJ의 계좌로 이체했다고 한다. 투베어픽쳐스는 CJ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영화계에서 CJ는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법을 우회적으로 피해가려고 지금 이런 방법을 쓴 거죠. (창업투자회사) 거기를 등록해준 건 ‘너는 오로지 중소기업 관련된 분야 아니면 그 벤처나 이런 데다 투자하라’고 허가를 해 준 건데 그것과 상관없이 대기업 계열사에 투자를 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제가 봤을 때 법 위반이 맞는 것 같습니다.”(성춘일 변호사)

창투사의 투자금은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만든 모태펀드에서 출자된다. 중소기업 창업 지원법에 따르면 모태펀드 출자금을 운용하는 창투사는 대기업에 투자할 수 없다. 그러나 대기업은 자금을 관리해준다는 명목 아래 중소 제작사를 거쳐 창투사의 투자금을 받고 있었으며, 관행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영화 산업 전반에 걸친 대기업의 영향력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은 일찍이 우리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수직계열화 된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독과점이 문제가 되어 소송이 진행된 바 있다. 이때 나온 판결이 바로 ‘파라마운트 판결’이다. 파라마운트 판결에서는 영화 제작과 배급 및 극장 소유를 분리하도록 명령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판결에 따라 극장을 매각하였고 자연스럽게 독과점 구조가 약해졌다.

그러자 독립예술영화들이 상영되기 시작했고, 다양한 콘텐츠가 영화 시장에 등장하게 되었다. 1980년 규제는 완화되었지만, 아직 파라마운트 판결은 유효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라마운트 판결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막강한 자본력이 떠나면 영화 시장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표하고 있다.

‘PD수첩’은 17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