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클래식 기타 사운드에 관심을 가졌던 때는 2천년대 초반이었다. 워낙 미모가 출중했던 무라지 가오리 (むらじかおり)의 공연 DVD와 오디오 파일용 SACD가 한국의 오디오 및 클래식 팬들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음악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소프라노의 '안나 네트렙코'나 피아노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와 마찬가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한동안 잊고 지냈던 무라지 가오리가 다시 떠오르게 만든 영화가 바로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이시다 유리코 주연의 중년 로맨스 영화 '가을의 마티네'이다.

중년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매력적인 일본 영화하면 아마도 '냉정과 열정 사이', '실락원' 그리고 '메꽃: 평일 오후 3시의 연인' 정도를 꼽을 수가 있는데, 바로 '메꽃'의 드라마와 영화를 연출했던 '니시타니 히로시'가 '가을의 마티네'에서 메가폰을 잡았다. 그러니 특화된 자기 전공을 되살리는 작품이기 때문에, 웰메이드라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단, 원작 소설 그대로 아련함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메꽃'에 비해서는 조금 덤덤하고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있다. 대신 그 공백을 메워주는 매력적인 요소가 바로 클래식 기타의 선율이다. '마티네 (matinée)'는 대개 할인 가격으로 밤이 아닌 평일 낮에 거행되는 음악회를 말하는데,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 학생이나 매니아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음악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대하지 않았던 우연한 감동을 얻게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영화 '가을의 마티네'는 작품 자체는 솔직히 약간은 하품이 나오기도 했지만, 뜻밖에도 완전히 잊고 있던 무라지 가오리의 클래식 기타 CD를 재생하게 만들어준 공로를 높이 사고 싶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극히 주관적인 관점이고, 아마도 '냉정과 열정 사이'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스타일의 클래식 로맨스 팬들에게는 훌륭한 연말 연시 감상용이 될 수도 있겠다.

아! 그리고 사족이지만,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지나치게 정형화된 꽃미남 배우라서, 중년 시절의 야쿠쇼 코지 같은 그윽하면서도 강렬한 성인 남성의 야누스적 매력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배우이다. 중년이 된 정우성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정재를 넘어서기가 힘든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까? 그런 면에서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도 정우성이나 마사하루나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