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 / 오디오 평론가] 오디오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도 나름 큰 시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메이커로는 오렌더, 올닉, 칵테일 오디오, 아스텔 & 컨, 상투스 케이블 등이 서서히 부각되는 중이며, 쉽게 말해 K-팝의 열기와 어우러져 K-오디오의 부상도 기대해 볼만하다. 그러므로 우리보다 먼저 오디오를 접하고, 오디오 문화를 빨리 정립했으며, 현재 다양한 메이커가 포진한 일본의 오디오 상황을 둘러보고, 그들의 정체성과 전략을 알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기획의 마지막 3부에서는 테크닉스, 에소테릭, 마란츠 그리고 오디오 노트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7. 테크닉스(Technics)

LP가 주류를 이루던 1970~80년대에 조금은 음악을 진지하게 듣고자 한다면, 대부분 테크닉스에서 나온 턴테이블을 샀다. 가격도 착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음질도 괜찮아서, 지금도 이 회사의 제품은 중고로 널리 거래가 된다. 당연히 여기에 오디오 테크니카의 카트리지가 끼어있었다. 이 조합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CD 시대가 도래하면서, 동사의 턴테이블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동시에 앰프라던가 튜너를 만들던 오디오 부문도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 아예 이 시장에서 발을 뺀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몇 년전 뮌헨 하이엔드 오디오 쇼에서 테크닉스의 부스를 발견했다. 가보니 앰프와 CDP 등 신제품을 런칭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구원이 50명이 넘는다고 했다. 앞으로 턴테이블도 다시 만들 겁니까, 하는 질문에 담당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턴테이블이 나왔다. 테크닉스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하지만 그 내력을 보면, 지금에 이르기까지 꽤 지난한 여정을 거쳐왔음을 알 수 있다. 사실 2010년까지 SL1200과 같은 턴테이블을 근근히 생산하기는 했다. 그러나 도저히 채산성이 맞지 않고, 수요도 없어서, 그 해에 과감하게 오디오 사업을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동사를 소유한 파나소닉에 흡수되어, 가끔 오디오를 만들기는 했지만 테크닉스가 아닌 파나소닉 브랜드를 달고 나왔다.

그러나 오디오 파트에 속한 기술진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오가와 미치코라는 당찬 여성이 주축이 되어, 어떻게 하든 테크닉스의 가치와 미덕을 되살리려고 노력했다. 마침 회사 내에서도 단순한 전자 제품이 아닌, 뭔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감성 가치”에 대한 인식이 퍼지게 되어, 테크닉스 역시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처음 SL1200을 개발한 분의 제품 철학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세계 최초, 세계 제일,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라!”

이런 열망이 점차 현실화가 되고, 때마침 불어닥친 LP 리바이벌 덕분에 테크닉스는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SL1200GAE라는 신제품 턴테이블도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앰프, CDP, 네트웍 플레이어, 뮤직 서버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아날로그뿐 아니라 디지털 부문에도 과감한 R&D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격적인 면도 고려해서 일반 하이파이 유저들도 손을 뻗으면 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게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인켈이며 태광이며, 한때 주목을 받았던 오디오 브랜드가 몇 개 있다.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 언제쯤 테크닉스와 같은 화려한 귀환이 이뤄질지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8. 에소테릭(Esoteric)

www.esoteric.jp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수려하고 아름다운 마무리. 일절 빈틈을 찾을 수 없다. 또 단순한 CD/SACD 재생에 그치지 않고, 뭔가 고품위하면서 디스크에 담긴 모든 정보를 낱낱이 드러내는 괴물이기도 하다. 아직도 CD가 주력인 오디오 시장의 성격을 감안하면,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에소테릭의 제품은 꼭 체크하기 바란다.

물론 에소테릭은 앰프도 만든다. 이 역시 높은 퀄리티를 갖고 있다. 소스기와 동일한 디자인 컨셉과 마무리로 제작되어, 함께 사용하면 기쁨은 배가 된다. 소스기에서 얻는 높은 해상도와 질감을 앰프에서도 느끼고 싶다면, 동사의 앰프는 첫 번째 옵션이 될 것이다.

1982년 처음 CD가 발매되었을 때, 그 음질에 있어서 실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기계적이고 또 차가웠다. 대체 이유가 뭘까? 디지털로 하이엔드 음을 구축하고 싶다는 요망을 가진 오마치 모토아키는, 당시 티악에 제안, 별도의 회사를 설립한다. 그게 바로 에소테릭. 티악은 가전제품 전반을 다루면서, 특히 CDP에 각별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배경으로 보다 전문적인 CDP를 제조하려고 한 것이다.

이래서 80년대 후반에 나온 P1 & D1은 기발한 발상을 갖고 있다. CD를 구동하는 메커니즘부와 디지털부를 아예 분리시킨 것이다. 이후, 많은 하이엔드 업체가 이 구분을 따른 것은 당연한 이치. 이때 최고의 CD 드라이빙 메카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에소테릭만의 신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VRDS다. 안정적으로 CD를 구동하는 최고의 디바이스인 것이다. 이것은 1997년에 나온 P0에 이르러 절정을 맞았다.

한편 SACD의 고품질 음에도 주목, 이후 CD와 SACD를 모두 아우르는 메카니즘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VRDS-NEO. 이렇게 업계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제품 개발로 연결하는 동사의 자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모토아키씨는 현재 은퇴한 상태로 회사의 고문 역할을 맡고 있지만, 동시에 과거의 명연을 복각해서 SACD에 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과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상당한 식견과 지식을 소유한 분이라 하겠다.

에소테릭은 비법 혹은 심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CD나 SACD에 담긴 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어내서 완벽하게 앰프쪽에 전달하겠다는 사명과 뭔가 통하지 않은가?

9. 마란츠(Marantz)

www.marantz.jp

마란츠로 말하면, 5~60년대 진공관 시대에 일세를 풍미한 7이라는 프리와 8, 9 등의 파워로 유명하다. 당시 이 제품 하나의 가격이 주택 한 채와 맞먹을 정도. 그러므로 이 제품이 진열된 숍의 윈도우 앞에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애호가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필자 역시 틈틈이 이 제품을 듣고 또 동경했던 추억이 있다.

1953년 미국에서 소울 마란츠씨 (Saul B. Marantz)에 의해 설립된 이 회사는, 창업자의 이름을 딴 메이커다. 그런데 왜 이 브랜드가 지금 일본 소유가 되었나? 참, 복잡한 사연이 있다.

Saul B. Marantz

사실 오리지널 마란츠로 말하면, 전설적인 엔지니어가 가득한 회사였다. 시드니 스미스, 리처드 세퀘라 등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만한 분들이 가득했다. 문제는 너무 테크놀로지 일변으로 치달아 시장의 변화를 쫓지 못한 것이다. 결국 1964년에 슈퍼스코프사에 매각이 된다. 이후 진공관이 아닌 트랜지스터 앰프쪽에 전념하게 되는 바, 리시버나 인티 앰프 등을 다수 생산하게 된다. 이 배경에는 일본의 스탠다드라는 OEM 회사의 역할이 컸다.

이후 1980년에 필립스에 넘어가게 되면서, 당시 필립스가 소니와 손잡고 개발한 CD쪽에 특화되기에 이른다. 이것은 역시 두 회사가 나중에 제안한 또 다른 포맷인 SACD에도 해당한다. 즉, 마란츠는 이 두 포맷을 창안한 필립스에서 원천 기술을 습득한 상태로 제품을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2001년에 완전히 일본 마란츠로 통일된 이후, 음질 위주의 실력기를 차근차근 발표하는 메이커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SA 시리즈의 CD/SACD 플레이어와 PM 시리즈의 앰프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최근작으로는 SA10과 PM10이 있는데, 가격대비 높은 만족도를 선사하고 있다.

한편 마란츠는 대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항상 사운드 매니저를 내세워서 한 개인의 개성과 역량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슈퍼스코프 산하에 있을 때엔 데이빗 하드레이, 제임스 본조르노 등이 활약했고, 현재는 오카다 요시노리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브랜드의 밸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은 매우 신선하고 또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10. 오디오 노트(Audio Note)

오디오 노트는 앰프, 스피커 등을 비롯해서 케이블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오디오 전 품목을 아우르고 있다. 디자인에 그다지 신경 쓴 것도 아니고, 별다른 마케팅도 하지 않지만, 가격대는 상당히 높다. 그냥 아는 사람만 알아서 사가라는 식이다. 그러나 오디오 노트만의 라인업으로 구축한 하이 퀄리티한 음은 분명히 매력이 있다. 전세계에 확실한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AUDIO NOTE CO., LTD.

1989년, 은을 소재로 한 부품으로 무장한 “온가쿠”라는 진공관 앰프가 홀연히 등장한다. 지금 가격으로 보면 무려 8천만원이 넘는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음 또한 굉장했다. 이 앰프를 디자인한 콘도 히로야스씨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더불어 그가 만든 오디오 노트 역시 외국에서 큰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원래 레코딩 엔지니어였던 히로야스씨는 음을 보다 좋게 만들기 위해 트랜스 개발에 몰두했다. 그런 어느 날, 순은으로 된 선재를 감으면 어떨까 싶어서 시도해봤다. 그 음은 경천동지할 수준. 이후, 은을 소재로 한 리드 저항, MC 트랜스 등을 만들면서 케이블까지 개발, 급속한 기술적 축적을 쌓기에 이른다.

회사 자체는 1976년에 만들었지만, 본격적으로 주가를 올린 것은 90년대 이후. 당시 일세를 풍미하던 크렐이며 마크 레빈슨에 필적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다만, 2006년에 히로야스씨가 타계하면서 그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를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전열을 재정비하고, 회사를 가와사키시로 옮기면서 착실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서 적극적인 영업도 해서 꽤 많은 팬을 거느린 상태. 우리나라에선 아직 아는 분만 아는 정도라, 그 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 AUDIO NOTE CO., LTD.

아무튼 온가쿠와 같은 쇼킹한 제품, 통상의 관념을 벗어난 발상으로 확립한 동사의 이미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무엇보다 각종 부품에 남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어서, 앰프뿐 아니라 턴테이블, 카트리지 등에서도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레벨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부터 국내 시장을 신경 쓰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부분은 우리나라 업체들에게도 좋은 모범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상으로 총 10개의 브랜드를 소개했다. 물론 이 리스트가 전부는 아니다. 일본은 대기업에서도 여전히 오디오 부문을 유지하고 있으며, 가끔 깜짝 놀랄 만한 제품을 발표한다. 건실한 중소 기업도 많고, 오타쿠에 가까운 설계자들이 운영하는 공방도 많다. 시장이 큰 만큼, 자체내의 경쟁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덕분에 어지간한 실력 갖고는 일본 시장을 노크조차 하지 못한다. 바로 이 부분이 재팬 오디오의 진정한 강점이 아닐까 판단이 된다.

- 이종학 평론가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hn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