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떤 나라?’라고 물으면 아마 일본인은 “역사와 전통이 현대 사회와 절묘하게 혼합된 나라”라고 답할 것이다.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 키는 역사에 있다. 일본 역사의 한 단락이 된 역사적인 뉴스를 소개한다.

 

사진 출처 : 일본 관광청

#고대 왜국

기원전 1만 2000년부터 800년경까지 이어진 조몬 시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가 꽃핀 시대다. 조몬 시대 초기의 유적에서는 밧줄과 끈을 눌러 붙여 모양을 만든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또한, 토기에 붙여진 이 줄 모양을 ‘조몬’이라 부르고, 이 시대의 명칭이 되었다.

조몬인의 생활은 수렵과 채집이 중심이었지만, 이어진 야요이 시대(기원전 300~250년)에는 농경이 시작된다. 논의 이용이나 쌀의 수확량은 국가의 번영을 가져옴과 동시에 일본 최초의 신분 계층도 이 시대에 확립되었다. 또 조몬・야요이 시대의 일본은 왜국이라 불렸다고 한다.

#히미코 : 일본 최초의 여왕

왜국의 통치자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권력 투쟁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중국의 기록에 의하면 70년에 걸쳐 계속된 ‘왜국 대란’ 후 전란의 이유가 남성 지배자의 폭력성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평화를 바라며 여성 통치자를 원했다. 그리고 점으로 인민의 마음을 잡고 있던 젊은 여성・히미코가 여왕에 즉위했다. 히미코가 통치한 나라는 야마타이국이라 불린다. 

히미코가 행했던 ‘사귀도’나 ‘능혹중’과 같은 기도는 고대신도(古代神道)에서 유래되었다. 그녀는 여왕인 동시에 무녀(여성 기도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고대 중국의 기록에는 야마타이국은 그녀의 통치 아래, 평화롭게 영토를 확장했다고 되어 있다. 

여왕・히미코와 야마타이국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고, 그 나라가 어디에 있었는지 등의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일본 역사상 가장 신비한 존재 중 하나다.

#쿠데타와 천황제의 시작

이어서 일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주제 국가인 야마토국이 건국했다. 야마토국을 통치한 것은 천황으로, 이 가계는 현재도 계속 일본 황실에 계승되고 있다. 538년 백제에서 불교가 전해지면서 아스카 시대가 막을 열었다. 불교 포교에 진력한 것이 이 시대에 가장 중요 인물 중 하나인 쇼토쿠 태자다. 천황의 대리로서 정치를 하던 그가 수나라(현재의 중국)의 황제에게 보낸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지는 곳의 천자에게 서신을 보낸다’라는 서신의 한 문장에서 이 나라는 ‘해 뜨는 나라’, 즉 일본으로 알려지게 된다.

쇼토쿠 태자는 천황의 통치 아래 권력을 쥔 소가 가문 출신이었다. 소가 가문은 또 불교를 지지하는 일족이기도 했다. 이윽고 소가 가문은 득세하여 호사스런 집에 살며, 거대한 묘를 세우는 등 마치 통치자처럼 행세하게 되었다. 쇼토쿠 태자의 사망 후 이런 소가 가문의 오만함을 참을 수 없었던 일파가 「을사의 변」이라 불리는 쿠데타를 일으켜 소가 가문의 우두머리인 소가노 이루카를 암살한다.

그 후 고토쿠 천황이 다시 조정을 중심으로 한 통치를 위해 중국의 철학을 본뜬 법률 개혁을 단행했다. 이를 ‘다이카 개신(대화 개신)’이라 한다.

#국제적인 나라 시대

다이카 개신은 정치 개혁의 첫걸음에 불과했다. 나라 시대(710~794년), 조정은 당조(현재의 중국)로부터 가져온 문헌을 바탕으로 조세와 군역, 그리고 위계 등 수많은 법률로 이루어진 율령제라 불리는 제도를 정하여 일본 통치에 주력했다. 이처럼 나라 시대는 활발한 외교 관계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중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또 나라 시대 초기에는 일본의 가장 오랜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기록됐다. 이런 서적은 천황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다이안지나 고후쿠지 외에, 나라의 대불상으로 알려진 도다이지 등 수많은 절이 건립되어 불교가 번영한 시대이기도 했다.

#우아한 헤이안 문화

1185년까지 정치 중심이었던 조정은 예술과 문화의 발신지이기도 했다. 무라사키 시키부의 세계 최초의 소설 ‘겐지모노가타리’, 화려한 조정의 생활을 그린 세이쇼 나곤의 ‘마쿠라노소시’ 등도 이 시대에 만들어진 문헌이다. 또 ‘오하구로’라 불리는 이를 검게 물들이는 풍습이나 히라가나의 음절 체계까지 일본의 전통으로 알려진 많은 것들이 이 시대에 확립됐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 조정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의 아름다움이다. 그녀들은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쥬니히토에라 불리는 12겹의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우아한 문화를 꽃피우면서도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궁정은 쇠퇴의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귀족들이 정치보다 유희에 빠져있던 것은 문화와 예술의 발전에는 기여했지만, 행정에는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편 쾌락에 빠진 귀족들을 피해, 무사를 신하로 조직한 일부 귀족과 민중에 영향력이 있는 신사, 절이 서서히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쇼군 시대의 개막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한편, 군사력을 얻은 자들은 점점 세력을 키워 나갔다. 이윽고 천황의 황위 계승을 둘러싼 분쟁이 발발하여, 긴 세월 권력을 쥐고 있던 헤이시(平氏)와 그 친족 관계이면서 군사력을 키워놓은 겐지(源氏) 사이에 내란이 일어난다. 그 분쟁이 정점에 다다른 것이 ‘겐페이 전투’(1180~1185년)다. 1300년에 기록된 ‘헤이케모노가타리’는 이 참혹한 분쟁에 의한 헤이케(平家) 일문의 몰락을 그린 것이다. 

겐페이 전투가 끝나자 겐지(源氏) 우두머리였던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쇼군이 되고, 가마쿠라 막부를 세웠다. 이때부터 사실상 일본의 지배자는 천황에서 쇼군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평화는 오지 않고 오히려 권력을 쥐려는 사무라이들의 거듭된 분쟁으로 일본은 긴장과 전란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 시대는 후에 쇼군 시대 혹은 전국시대(1497~1603년)라 불리게 된다.

#전국 시대의 세 영걸

전국 시대에 일본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3명의 무장이다. 그들은 많은 가신을 두고, 자신의 땅을 통치하는 영주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전술의 키는 책략과 배신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둔 순간, 가신이었던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배신당해 암살된 ‘혼노지의 변’이다. 그 직후 오다의 가신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케치 미쓰히데를 처형하고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었다. 결국, 아케치 미쓰히데의 의도대로는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요토미 정권에 마지막까지 맞선 것은 오다와라를 통치하고 있던 호죠가였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도 손을 잡은 도요토미 군이 오다하라 성을 포위 공격해 패하게 된다. 이렇게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포함한 영향력 있는 5개의 무가로 구성된 고다이로를 조직하고 세상을 떠났다. 

1598년 이미 힘을 갖고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의 아들이 사는 오사카 성을 공격했다. 이것으로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다이묘와 이시다 미쓰나리를 중심으로 한 다이묘의 양대 세력으로 나뉜다. 1600년 두 정권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격돌하지만, 이시다 측의 여러 다이묘가 배신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자로 부상했다.

#대중문화가 꽃핀 에도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압도적인 통솔력으로 일본 정치의 중심은 천황이 살고 있던 교토에서 현재의 도쿄인 에도로 옮겨졌다. 1603년, 에도 시대의 개막이다. 에도 시대에는 우키요에와 가부키, 기모노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수많은 일본의 전통문화가 확립됐다. 이런 문화가 꽃핀 것은 전란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오랜 세월 이어졌고, 귀족이 아닌 대중이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큰 이유였다고 생각된다.

#흑선 내항과 에도 시대의 끝

1853년, 긴 세월의 평화가 계속된 에도 시대의 ‘끝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동안 쇄국을 하고 있던 일본에 미국의 군인・페리가 이끄는 흑선이 내항한 것이다. 또한, ‘흑선’이라는 호칭은 이 소형 증기선이 내뿜는 검은 연기가 일본인들을 두렵게 한 것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페리 제독의 내항 목적은 일본과 미국의 무역협정을 요구하는 미국 제13대 대통령 밀라드・필모어의 서신을 쇼군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에 직면한 에도 막부는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약 1년 후 미일화친 조약이 체결되어 오랜 쇄국 정책은 끝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이 조약에 반대하는 자도 있어, 일본은 다시 내란의 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안녕 촌마게! 다시 천황제

이윽고 천황을 다시 일본의 통치자로 끌어 올리려는 존황 운동이나 “서양의 야만인”을 배척하자는 양이 운동이 일어났다. 막부는 군사력으로 이것을 제압하려고 했지만, 긴장은 고조될 뿐이었다. 얼마 안 있어 일본 전토가 말려드는 보신 전쟁이 발발하지만, 천황을 통치자로 한 관군이 승리. 그리고 1868년, 막부의 군사 정권을 철폐하는 정치 개혁인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다.

서양 문화의 유입은 사람들의 생활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기모노는 정장이나 바지, 원피스와 스커트로. 또 머리를 깎아 앞머리부터 정수리에 남긴 머리를 땋은 ‘촌마게’와 같은 머리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는 세계를 따라잡고자 문화부터 유산까지 급속하게 근대화한 시대이기도 했다.

#아시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불과 수십 년 사이의 급속한 기술의 발전으로 일본은 서양 사회와의 관계를 쌓아갔다. 1914년에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 시 일본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운 프랑스, 영국, 러시아의 삼국 협상과 실질 협력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패전한 독일로부터 태평양의 영토를 탈취. 그 결과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세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일본은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과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와 함께 추축국이었다. 그리고 아시아 대부분을 손에 넣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미국에 패하여, 1945년에 무조건 항복하게 되었다. 수년에 걸친 민주화 정책과 미군의 점령 후 1952년에 일본은 서방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 후 1960년부터 1970년 사이에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은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경제력 있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독창성 있는 일본 제품은 지금도 세계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