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erson, Lake & Palmer가 전자 드럼을 사용하면서 시작된 1970년대의 전자음악은 독일 크라프크베르크의 'Radioactivity' 그리고 일본의 3인조 그룹 Yellow Magic Orchestra를 거치면서 팝 뮤직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이끌던 YMO를 처음 접한 것은 70년대 말 주한미군 TV 방송이었던 AFKN, 단순하게 반복되면서 비현실적으로 (Surreal) 다가오는 YMO의 전자 음악은 가슴보다는 머리로 먼저 전달된다는 장점이자 단점을 동시에 모순적으로 내재하고 있어서 상당히 미래적인 느낌을 전달받았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배우로 출연했던 나기사 오시마 감독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데이빗 보위의 광팬이었던 나로서는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었으며, 당연히 류이치 사카모토가 만든 테마 역시 일생의 애청곡이 되었다. 이 영화 역시 AFKN TV를 통해서 처음 보았다. 

대한민국이 이제 겨우 경제적으로 성장의 걸음마 단계를 지나며 정치적으로 혼돈에 빠져있던 80년대에, 이미 고도 성장의 정점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문화의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는데, 류이치 사카모토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그의 근래 일상을 다룬 다큐 무비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사실 위에 열거한 아티스트로서의 궤적 보다는, 후쿠오카 원전 사고 이후 그가 사회적, 정치적 액티비스트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동기를 배경으로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나로서는 보면서도 별 재미는 없었지만, 한가지 공감한 것이라면 'Japanese Man In New York'으로서 민도는 높지만 정치, 사회 문제에는 집단적 벙어리들인 일본 시민들을 위하여 혹은 저주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암 투병을 거치면서도 무덤덤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에 골몰하는 점이 정말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음악가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가 된다. 존 윌리엄스나 엔니오 모리코네 처럼 영화의 감정선에 불을 붙이거나 혹은 심하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스타일이 있고, 반대로 류이치 사카모토나 대니 엘프먼 처럼,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면서도 서정미 풍부한 운율보다는 특유의 스타일로 관객의 기분을 침잠 혹은 아리송의 세계로 몰아가는 청개구리 파들이 있다. 당연히 전자의 음악가들은 대중의 귀에 익숙한 스매쉬 히트 테마가 많고, 후자의 음악가들은 대중이 아는 대표곡이라던가 시그니쳐 테마가 거의 없다. 그저 스타일 만이 존재할 뿐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 다큐를 통하여 '타르코프스키' 감독과 '바흐'의 음악에 존경을 넘어 경외심을 표출하고 있지만, 류이치 사카모토 그 자신도 나에게는 '큰 바위 얼굴'로서 항시 자리매김하고 있는 위대한 아티스트이다.

[사진제공 = 씨네룩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