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제2차 록 뮤직의 르네상스라 칭하는 1990년대는 너바나, 라디오헤드, 펄 잼 등의 얼터너티브 록 그룹들이 제일 먼저 연상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선했던 MTV 언플러그드의 등장과 여성 록 뮤지션들의 약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90년대 이전에도 록 씬에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그레이스 슬릭부터, 재니스 조플린, 플리우드 맥의 스티비 닉스, 하트의 앤 윌슨, 프리텐더스의 크리시 하인드 등등 수퍼스타급 여성 록 뮤지션들이 산발적으로 존재했지만, 여성들이 동시에 대거 등장한 것은 90년대가 처음이다.

시네이드 오코너, PJ 하비, 쉐릴 크로우, 리즈 페어, 멜리사 에써리지, 알라니스 모리세트, 사라 맥라클린, 쥬얼, 셜리 맨슨 등이 90년대 록 뮤직 씬에 등장하여 각자 창의적인 앨범들과 곡들로 전세계 록뮤직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특히나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했던 곡은 크랜베리스의 'Zombie'였다.

@TheCranBerries

한국에서는 'Dreams'등의 팝 히트곡으로 유명했던 크랜베리스이지만, 이들의 세계적인 시그니쳐 곡은 누가 뭐라해도 록 넘버인 'Zombie'였다.

IRA 폭탄에 사망한 두 아일랜드 어린이들을 추모하여 만든 'Zombie'는, 이런 내용을 모르고 들어도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애절한 분노가 단박에 느껴지며, 뮤직 비디오를 통해서는 테러의 참상이 강렬하게 부각된다.

작년에 재결합하면서 새 앨범도 출시하고 투어를 시작하려 했던 크랜베리스였지만, 돌로레스의 등 부상으로 인해 투어가 연기되었고, 우을증 증세를 보이던 그녀가 46세를 일기로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아일랜드는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할 만큼 큰 충격에 빠져 있다고 한다.

셀틱풍 아일랜드 가수들의 노래에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 겹겹이 쌓여온 처절한 분노가 응고되어 있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흉내를 낼 수가 없다. 아마도 U2의 'Sunday Bloody Sunday'와 함께, 크랜베리스의 'Zombie'는 저항과 좌절, 분노를 응축한 아이리쉬 록의 명곡으로 영원히 기억되리라 믿는다.

술을 마시지 않지만, 오늘은 아이리쉬 위스키를 한잔 마시며 하루 종일 크랜베리스 노래들을 듣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