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말일이 되면 NHK 월드 프리미엄 채널을 통해서 이어 엔딩 쇼인 '홍백가합전'을 시청하곤 하지만, 사실 이 대형 쇼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미국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나 그래미 시상식 처럼 두세시간 정도 TV 앞에 앉아서 해결되지 않는, 그야말로 프리 토크부터 시작해서 거의 하루 종일 진행이 되는 너무나도 긴 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12월 31일, 드디어 큰 맘을 먹고 일체의 약속도 잡지 않고 오후 5시부터 TV 앞에 앉아 11시 50분까지 거의 7시간 가량을 풀로 시청을 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 대단한 쇼는 그래미나 아카데미 시상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위대하다.'

끝도 없이 출연하는 일본의 신구 아티스트들과 오랜 노하우를 통하여 정교하게 연출되는 스테이지에 한국의 이어 엔딩 쇼들과는 다르게 어색함이 1도 없는 장시간의 라이브 쇼. 전국의 대형 아레나와 연결되는 실시간 중계와 그 규모. 뒤늦게 이제서야 풀 시청을 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릇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속을 채우는 것은 출연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

Perfume, 노기자카 46, Misia, 요시키 & 사라 브라이트먼, Suchmos, DA PUMP, 요네즈 켄시, 마츠다 세이코, 아이묭, 히라노 겐 등등 수많은 스타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는 뜻밖에도 60대의 엔카 여가수 '이시카와 사유리 (いしかわさゆり)'.

일본의 전통 화악기를 배경으로 이시카와가 엔카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는, 사실 누군지도 잘 모르고 "이 틈에 잠시 담배나 한대 피우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굉음처럼 찢어지는 헤비메탈 록 기타의 강렬한 리프. 일본의 록 그룹 'BOφWY'의 기타리스트인 '호테이 토모야스'가 등장하며 이시카와의 엔카를 서포트하기 시작한다.

오랜 옛날 올리비아 뉴튼 존이 스윙 재즈를 노래할 때 록 그룹 Tubes가 끼어들며 울려 퍼지던 'Dancing'의 수준을 넘어서서, 엔카와 록에 일본 화악기 군단의 소리가 어우러지니 이는 마치 인도의 라비 샹카가 비틀즈를 시작으로 영미권의 록 뮤지션들과 교류하던 시절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대중음악이 예술로 승화되는 경지의 퍼포먼스였으며, 이런 수준의 퍼포먼스를 1년중 가장 인기있고 가장 대중적인 방송 쇼에서 연출해낸다는 점에 놀라고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시각, 한국의 MBC TV에서는 아이돌 가수들이 몰려 나와 어설픈 MC들의 진행 속에서 어설프게 방영이 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을 지는 나 역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존심이 상해서 글로 옮기지는 않겠다.

반일 감정이라는 허명 아래 너무나 오랜 세월 일본 대중 음악을 차단한 결과, 나같은 전문가 조차도 AKB48보다는 BTS나 트와이스가 좀 낫다는 이유로 전체적인 볼륨에서 이렇게 수준 차이가 날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하지를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태산같지만, 일단은 내 생각부터 다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