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일찍 그리고 방대한 양의 영화 및 음악 자료를 접한다는 점에 끌려서 30이 넘은 나이에 하던 사업을 접고 전혀 돈이 되지 않는 방송 프로그램의 구성 작가를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20여년전 일이다. (월 50만원 정도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 선택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내 심장이 가리키는 곳으로 갔을 때는, 설사 별 소득이 없거나 실패하더라도 전혀 미련의 부스러기가 남지 않는다는 점을 지금도 후배들에게 강조한다. 연극 연출가들이 배우들에게 단골로 던지는 멘트들중의 하나는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몸을 왜 아끼나? 굴려!"...^^ (그나저나 이 멘트가 말하려던 주제와 맞나?)

개봉한 지가 한달여가 지난 영화 '더 포스트'를 뒤늦게 보았다. 영화야 뭐 스필버그에 메릴 스트립, 톰 행스 그리고 아카데미부터 각종 상을 받았으니 좋다 말다 재밌다 없다는 이미 넘어선 것이고, 남겨둔 숙제를 하듯이 본 영화였지만, 엔드 크레딧이 오를 즈음 아주 오랜 만에 잠깐의 '머엉'을 때렸다. 영화를 보고 '머엉'을 때려본 마지막 기억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상상력이 뛰어났던 감독이 만든 실존 역사의 고찰. 언론. 페미니즘.

특히나 이 영화가 고마운 점은, 방송과 언론에 종사해 오면서 비록 덜 심각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이기는 하지만, '어느덧 꼰대 나이가 된 지금의 나'를 잠시나마 리프레쉬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

"맞아. 그저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책임도 뒤따르는 소중한 일이다"를 다시금 상기하면서, 내일도 또 연예계의 '조질 구석'을 찾아 나서야겠다. 수만아 기다려라. 나는 너만 죽도록 패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