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그 이름만 들어도 나는 머리 속에서 파노라마가 친다. 2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내 동생이 이따끔씩 한국을 찾아 왔던 이유도 황병기의 연주회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사진 촬영: 이상무

내가 고등학생이고 동생이 중학생이던 시절, 우리는 황병기의 '미궁'을 듣고 말 그대로 전기 충격을 받았다. 핑크 플로이드나 존 맥라플린, 마일즈 데이비스 등에 흠뻑 빠져 있던 우리 형제에게, 황병기의 '미궁'은 최초로 접하는 포스트 모던 음악이었고, 이후 우리는 스트라빈스키부터 쇤베르크나 알반 베르그 등 현대 음악에 한동안 완전히 미쳐서 지내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말도 안되는 사다리 방정식이지만, 우리 형제에게 황병기는 국악 아티스트로서가 아니라,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먼저 다가와서 지금까지도 그렇게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황병기의 제자인 이화여대 대학원생과 데이트를 하면서 교수님 황병기는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고 (사실 모든 학생들이 그렇듯이 교수 이야기가 나오면 칭찬 약간에 욕이 반인 것은 똑같더라...^^), 다시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인 3년전, 드디어 황병기 본인과 점심 식사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가야금을 탈 때는 기백이 여전했지만, 식사하는 자리에서의 황병기는 이미 노쇠하여 작은 목소리의 평범한 노인이었다. 내 앞에 앉아 식사하고 있는 이 노인이 내 인생의 실타래 일부를 어루만진 장본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가슴 벅차 오르기도 했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송소희를 화제로 삼자 "음..녀석 참 잘하고 이쁘지요"라며 빙그레 웃는 그 모습은 마치 친손녀 자랑을 하는 듯한 할아버지의 미소 그 자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제일 먼저 장윤정의 '초혼'을 다시 듣고 또 들었다. 아마 내가 세상을 떠날 때는, 나의 장례식에서 황병기의 '비단길'을 흐르게 해달라고 유언을 남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