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혐오자'로서 무작위로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하여 대량 살상을 일삼던 '유나바머'.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라 불리우다 작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찰스 맨슨'.

70년대에 연쇄살인범 (Serial Killer)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만든 이 현대 범죄의 두 거장들(?)은, 이후 대중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특히나 범죄 수사물 영화와 드라마들이 추리극에서 심리극으로 전환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일등공신들이다.

1991년작 영화 '양들의 침묵'은 시리얼 킬러를 소재로 대중적으로 가장 히트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전인 1979년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이 드라이하면서도 생동감 충만하게 (상반된 개념을 폴리포닉하게) 연쇄 살인마를 작품에 담아 냈다고 판단한다.

'내가 살인범이다'를 리메이크한 '이리에 유' 감독의 '22년 후의 고백'은 시리얼 킬러를 소재로 삼고는 있지만, 극 전개는 마치 '제시카 추리 극장'처럼 '범인이 누구냐'로 이야기를 몰아간다.

문제는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심리전도 적당히 다루고 싶고, 반전이 우선되는 추리극의 재미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보니, 결국은 갈팡질팡 길을 잃었고, 배우들마저 힘을 주어야할 부분과 힘을 빼야하는 시퀀스를 간파하지 못하여 보기에 민망할 수준이었다.

아마도 감독은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드라마 '셜록' 시리즈 처럼, 번뜩이는 추리의 반전도 살리고, 현대 문명의 파생 상품인 연쇄살인범의 심리와 프로파일링의 치밀함도 드러내 보이고 싶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인의 내공을 전혀 모르고 욕심을 부린 듯 싶다.

언론 시사회의 예의상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는 못했지만,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전성기의 키타노 타케시 감독이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출했더라면, 어떤 작품이 등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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