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등장한 새로운 생태계, 들개는 인간에게 버려지고 인간에게 쫓기는 존재다. 어느 곳에서도 허락받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가 ‘다큐시선’에서 공개된다.

깎아지른 바위산을 가볍게 오가는 몸놀림. 날렵한 근육질 몸매에 탄탄한 네 다리. 밤하늘을 향해 내지르는 늑대 같은 울음소리. 사람들은 이들을 소위 ‘들개’라고 부른다.

현재 서울을 떠돌고 있는 들개만 120여 마리. 들개는 국립공원에서는 외래종 혹은 생태 교란종으로, 사회에서는 위험 동물로 배척당한다. 사람들이 버린 유기견에서부터 시작된 들개들. 깊은 산 속에 펼쳐진 그들만의 세계가 공개된다.

사진 제공 : EBS

들개 포획 전문가, ‘서울 들개’를 쫓다

“빨리 이 작업을 끝내서 들개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주변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며 음식을 먹는 들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굶주림은 본능을 넘어선다. 수풀 사이로 들개의 모습이 완전하게 드러나는 순간, 트럭에 몸을 숨기고 있던 전문가의 눈이 반짝인다. 호흡도 멈춘 채 천천히 방아쇠를 당긴다. 탕, 소리와 함께 들개의 외마디 비명이 산을 울린다.

야생동물 포획 경력 20년차 들개 포획 3년 차인 방기정 씨는 서울 곳곳을 돌며 작년에만 40여 마리의 들개를 포획했다. 들개는 유기견으로 분류되기에 사살이 아닌 포획을 해야 한다. 사살용 총보다 사정거리가 짧은 마취 총으로 들개들을 생포하기는 쉽지 않다.

가축을 습격해 인간에게 피해를 주고 산속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포획되는 들개들. 작년 서울시에서는 포획 틀과 마취총 등으로 들개 120여 마리를 포획했다. 포획된 들개 중 절반이 넘는 개들이 안락사 처리됐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상처도 모자라 포획·안락사의 두려움까지 겪어야 하는 존재들. 들개의 비극은 계속되어야 하는 걸까?

녹번동 들개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해서, 생명을 마음대로 잡아서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을 보고 있으란 말이에요?”

녹번동 골목 가에는 이색적인 풍경이 있다. 도로에 배를 깔고 한가롭게 누워있는 네 마리의 개들. 골목을 유유히 걸어 다니다 새로운 개가 보이면 으르렁대며 세력다툼도 한다. 녹번동을 꽉 잡고 있는 이들은 북한산과 주택가를 오가는 들개 무리다. 들개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주민들이 있어 점심 무렵 항상 골목은 ‘개판’이 된다.

그러나 들개를 모두 포획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입장과 밥을 주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팽팽히 부딪히고 있다.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녹번동에는 여전히 들개들을 향한 마취총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간들의 갈등 사이에서 들개들은 과연 녹번동에 계속 머물 수 있을까?

EBS ‘다큐시선-들개 잔혹사’ 편은 26일 밤 8시 50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