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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여자' 사랑에 관한 사색과 성찰이 담긴 로맨틱코미디

12일 EBS ‘한국영화특선’에서는 영화 ‘아는 여자’를 방영한다.

2004년 제작된 영화 ‘아는 여자’는 장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정재영, 이나영, 오승연, 장 진, 임하룡 등이 출연했다.

영화 ‘아는 여자’ 줄거리

한때 잘 나가던 투수였지만 현재는 프로야구 2군에 소속된 별 볼일 없는 외야수 동치성. 애인에게 갑작스런 이별을 통고 받은 날, 설상가상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까지 받는다. 실연의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치성에게는 해당사항…. 없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마음으로 단골 Bar를 찾아가 술 석잔 에 엉망진창으로 취해버렸다.

눈떠보니 여관 방. 낯익은 바텐더는 치성에게 주사가 없음을 알려주며, 그를 접어서 봉투에 담아왔다고도 한다. 참 이상한 여자다. 다음날 야구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사연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지난 밤 자신의 이야기가 '필기 공주'의 사연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덧붙여지는 사랑 고백. '나를 아. 는. 여. 자.? 진짜 이상한 여자다.'

너무 오래 돼서 그를 왜 좋아하는지 까먹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다. 주업은 100% 당첨율의 라디오 사연 응모, 부업으로 바텐더를 하고 있는 여자 한이연. 10여 년 전, 치성과 이웃사촌이 되던 날부터 그의 발자국을 세어가며 조금씩 계속된 사랑. 그런데 어제, 술도 못 먹는 그 남자가 찾아와 갑자기 술을 달라고 했다. 그냥 만원어치만.

▲ '아는 여자' 스틸 컷

아니나 다를까, 거푸 세 잔을 마시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할 수 없이 그를 여관으로 옮겼고, 잠든 그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곁에 누워보았다. 하지만, 미친 듯 방망이질 치는 내 심장 소리에 그 남자가 깰까 봐 슬그머니 그의 곁에서 빠져나왔다. 그 사람 옆에 더 있고 싶었는데. 다시 아침. 처음 모습 그대로 아직 잠 들어있는 치성. 이 남자 주사도 없네… 부스스 눈을 뜨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아는 체를 한다. "어? 바텐더?"

그 남자와 나 사이. 이제, 그냥 “아는 여자”로만 있을 수 없다. 난생 처음으로 그 남자와 눈 맞은 기쁨을 라디오에 실어 보냈다. 경품으로 날아온 휴대폰. 남자에게 건네며, 전화번호 입수. 또 다른 프로에서 받은 식사권과 영화표로 데이트 신청도 성공. 이제 남은 것은 하나. 그냥 좀 '아는 여자'말고 그 남자 가슴 속 “특별한 여자”이고 싶다.

영화 ‘아는 여자’ 해설

“잘 뚫린 고속도로는 지루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일직선으로 뻥 뚫린 그 길이 설사 시속 160km를 보장하더라도 시야에 변함없는, 기껏해야 매번 똑같이 생겨먹은 휴게소만을 제공하는 고속도로는 질색이라고. 아마도 ‘아는 여자’ 장진 감독이 이 축에 들지 않을까. 속도를 속 시원히 낼 수는 없어도 굽이굽이 돌아가는 국도를 선호하는 부류 말이다. 이런 길은 지루하지 않다고 믿을 것이다. 요모조모 눈요기하며 내지르다가 떡하니 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 나타나면 아예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나마 한눈팔기에 좋으니까.

'아는 여자'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다. 목적지는 같고, 여하튼 그곳에 도착하기는 하지만 자꾸 딴 짓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타이밍에 그럴 것 같지 않은 캐릭터가 일을 벌인다.

“사랑은 새벽길을 산책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아침 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운치 있게 내레이션을 쏟아내던 이가 예상치 못하게 이별을 선언하는 여자 앞에서 쿨하게 반응하지 않고 가래침을 탁 내뱉으며 “가라, 너!” 하고 발길질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끝내 재회하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각자 죽음을 맞이하는 연인의 비극적 멜로물에서 진짜 주인공은 전봇대라고 우기는 영화를 상상해보라.

‘내겐 아주 특별한 그녀’도, ‘프리티 우먼’도 아닌 그냥 ‘아는 여자’라는 제목처럼 장진 감독은 장르를 거스르는 장르에의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그 장르가 하필 멜로이니 이건 관객의 감정선을 쥐락펴락할 자신감이 없고서는 불가능할 일이다. 시한부 인생의 씁쓸한 사랑 찾기를 콧구멍 후비기의 부작용과 연결 짓는 용기가 없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아는 여자’의 야심은 한이연의 10년 사랑이 지닌 비밀을 밝히기보다는 ‘사랑이 뭐냐’라는 동치성의 질문에 답하는 데 있다. 사랑에 관한 사색과 성찰이 담긴 로맨틱코미디라니, 이건 영국의 워킹 타이틀도 쉽게 엄두 낼 일이 아니다.

'킬러들의 수다'에선 웬만해서 읽어내긴 힘들던 장진 감독의 두 번째 속내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그는 혹시 “사랑이 그래, 사랑은 원래 허약한 거야, 사랑을 잡아, 이 등신아”라고 악쓰며 목숨 걸지 않아도, 내 주위에 맴도는 그저 아는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도 있음을, 지나고 보니 그게 사랑이 될 수도 있었음을 안타깝게 절감한 게 아닐까.

영화 ‘아는 여자’ 감독 장진

1971년 서울출생. 서울예술대 연극과를 졸업하였으며 대학 재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많은 연출과 습작을 하였다.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천호동 구사거리'가 당선되어 희곡작가로 입문했으며 그 후 연극현장에서 수편의 연극을 연출한 이력을 갖고 있다. 연극판에서 '허탕', '서툰 사람들', '택시 드리벌'등 주로 희극적인 내용을 다룬 희곡을 주로 집필하고 공연했다.

영화는 이민용 감독의 '개같은 날의 오후'와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의 각색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미 영화계에 수편의 시나리오 작가로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미 발을 들여놓았지만 1998년 코미디인 '기막힌 사내들'을 통해 본격적인 감독의 길에 들어섰다.

그 이후 식량난 해결을 위해 슈퍼 돼지 유전자를 탈취하기 위해 남파한 간첩을 소재로 한 '간첩 리철진'(1999)과 인터넷 상영공간에서 상영된 '극단적 하루'(2000), 그리고 '킬러들의 수다'(2001)에 이르기까지 연출 이력을 더해왔다. 그 후 '아는 여자'로 제5회(2004)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2005년 '웰컴 투 동막골'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 각색상 수상했다. 최근작으로 2010년 '퀴즈왕', '된장', 2013년 '하이힐', 2014년 '우리는 형제입니다' 등이 있다.

EBS 영화 ‘아는 여자’는 12일 밤 11시 20분에 방영된다.

박은철 기자  park0412@live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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