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나날들’ 노동자와 부유한 농장주 사이의 비극적인 삼각관계 “인간은 절반은 악마이고 절반은 천사”

25일 EBS ‘고전영화극장’에서는 영화 ‘천국의 나날들’(원제: Days of Heaven)을 방영한다.

1978년 제작된 영화 ‘천국의 나날들’은 테렌스 맬릭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리처드 기어, 브룩 아담스, 샘 셰퍼드, 린다 만트 등이 출연했다.

영화 ‘천국의 나날들’ 줄거리

1916년, 시카고 슬럼가의 제철소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빌(리차드 기어 분)은 우발적으로 공장장을 살해하고 여동생(린다 만츠 분)과 애인 애비(브룩 아담스 분)를 데리고 도망친다. 텍사스까지 흘러든 빌 일행은 떠돌이 노동자들과 함께 수확철의 밀 농장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빌은 사람들에게 애비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고, 이들이 남매인 줄로만 안 젊고 병약한 농장주(샘 셰퍼드 분)는 애비에게 청혼한다. 우연히 농장주와 의사의 대화를 들은 빌은 농장주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욕심에 애비에게 농장주와 결혼하도록 설득한다.

▲ '천국의 나날들' 포스터
두 사람의 결혼으로 빌 일행은 농장주의 집으로 옮겨가 한적하고 아름다운 대농장에서 꿈같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금방 죽을 거라는 빌의 예상과는 달리 농장주의 병세는 악화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빌과 애비의 관계는 모호해진다.

한편 둘의 관계를 눈치챈 농장주는 배신감과 분노를 삭이는 가운데 애비의 마음속엔 차츰 농장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이듬해 수확철을 앞두고 거대한 메뚜기 떼가 습격하여 밀 농장을 뒤덮자 메뚜기 떼를 없애려다 잘못 던진 불씨로 인해 농장은 하룻밤 새에 잿더미가 된다.

이 와중에 빌과 애비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 농장주는 빌에게 덤벼들고, 빌은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는데....

영화 ‘천국의 나날들’ 주제

‘천국의 나날들’은 떠돌이 노동자와 부유한 농장주 사이의 비극적인 삼각관계를 간결하지만 신비로운 요소들로 연결한 시적 아름다움이 넘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관찰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소녀의 시적이고 절제된 내레이션을 통해 인간은 절반은 악마이고 절반은 천사라고 말한다.

영화 ‘천국의 나날들’ 맬릭 감독은 이러한 인간의 모순적인 충동에 불을 붙임으로써 욕망과 갈망, 결합과 이합, 사랑과 증오의 충돌을 선과 악의 관점에서 묘사하지 않고, 인간은 때때로 자기 자신들뿐만 아니라 환경에게도 해를 가하는 파괴적인 성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천국의 나날들’ 감상 포인트

맬릭 감독은 1973년 ‘황무지 Badlands’에 이어 두 번째 연출한 이 작품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촬영을 담당한 네스토르 알멘드로스(Nestor Almendros)는 햇빛이 가장 아름답다는 해질녘과 새벽녘을 엄격히 지켜 자연 풍광을 담아냄으로써 영화사상 최고의 영상미를 구현한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황금빛으로 춤추는 광대한 밀밭, 고딕 양식의 그림 같은 저택, 노을이 질 무렵의 평화로운 모습 등 카메라로 그린 풍경화 같은 장면들 위로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의 음악은 영화 ‘천국의 나날들’의 품격을 더욱 높여 주었다.

아름다운 풍광과 시적인 영상 속에 펼쳐지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연상하게 하는 드라마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지만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얻어 1970년대 미국 영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칸영화제 감독상, 뉴욕비평가협회 감독상, 아카데미 촬영상 수상.

영화 ‘천국의 나날들’ 감독 테렌스 맬릭

1942년 11월 30일 일리노이주 오타와의 석유회사 중역의 아들로 태어난 테렌스 맬릭은 인격형성기의 대부분의 여름을 농장 노동자로 일하며 보냈고, 그 경험은 나중에 그의 영화 속에 광범위하게 반영된다. 맬릭은 하버드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을 수학하고, '라이프'지와 '뉴요커'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거쳐 MIT의 철학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1969년 AFI에 입학해 영화를 시작한 테렌스 맬릭은 '더티 해리' 등의 각본을 수정하는 일로 학비를 충당했다. 1973년 자신이 각본을 쓴 첫 영화를 준비하지만 영화사마다 자본을 대지 않았고 맬릭은 자신이 직접 제작을 하고 자신의 동료들을 불러모아 35만 달러에 '황무지'란 범죄 영화로 감독에 데뷔하게 된다.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띤 이 영화는 박스 오피스에서 그리 큰 흥행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미국 사회를 예리하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평단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이후 오랜 침묵 기간을 갖던 맬릭은 할리우드의 엄청난 자본을 끌어들여 1978년에 '천국의 나날들'을 완성하게 된다. 농장 생활을 중심으로 1910년대의 서부를 그린 이 영화는 1979년 칸영화제에서 맬릭에게 감독상을 안겨 주었다.

'천국의 나날들'은 영화의 거의 모든 부분을 해가 막 진 직후인 매직아워 시간에 촬영해 놀라운 풍광을 만들어 내면서 촬영감독인 네스트로 알멘드로스에게 1979년 아카데미상 촬영상을 안겨주는 등 영화제에서는 극찬을 받았으나 흥행에서 엄청난 참패를 거둬 이후 맬릭은 무려 20년간을 영화계에서 떠나게 된다.

1998년 맬릭은 전쟁의 상처를 그린 서정성 강한 전쟁 영화 '씬 레드라인'으로 복귀해 1999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는다. 그러나 테렌스 맬릭 감독은 그의 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한 세대 동안 거의 완벽하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내보내지 않았던 사람으로, 현시대의 영화 감독들 가운데 가장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트리 오브 라이프'로 6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2012년에는 '투 더 원더'로 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시그니스 상을 받았다. 최근작으로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보이스 오브 타임' 등이 있다.

EBS 영화 ‘천국의 나날들’은 25일 밤 11시 40분에 방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