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평양성 전투, 16세기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전…명 참전은 약이었나 독이었나?

25일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전쟁의 운명을 바꾸다 제2편 - 평양성’ 편이 방송된다.

1592년 6월 일본군은 조선의 철옹성이었던 평양성을 함락한다. 그리고 시작된 명나라의 참전, 16세기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전이 시작된 것이다.

■ 선조, 평양성에서 철수하다

백성들이 부르짖기를 “이미 성을 버리려고 했으면서 왜 우리를 속여 성에 들어오도록 하여 적의 어육(魚肉)이 되게 하는가?” - 선조수정실록 1592년 6월 1일

1592년 4월 13일,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북진해 20일만에 도성을 함락시킨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선조는 서둘러 피난길에 올라 평양으로 향한다. 평양성은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방어에 유리한 난공불락의 성으로, 선조는 이곳의 부로와 군민을 모아 “이 성은 죽음으로 지킬 것이니 과인을 믿고 동요하지 말지어다!”는 유시를 내리고, 백성들은 항전의지를 다진다.

▲ 사진 : KBS
하지만 일본군이 대동강에 당도하자 선조는 백성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도망치듯 의주로 떠난다. 성 안에 남겨진 군사들과 백성들은 평양성을 지키려 하였으나 조선군의 실수로 적군에게 대동강에서 물이 제일 얕은 여울목을 들킨다. 일본군은 순식간에 대동강을 도하하고, 평양성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 16세기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전

일본군의 빠른 북진 속도에 위협을 느낀 조선은 명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두 달이 되도록 명나라는 움직이지 않았고, 조선 영토는 일본군에게 철저히 유린당한다. 그런데 평양성이 함락되자 명나라 부총병 조승훈이 이끄는 3천여 명의 군사가 압록강을 건너온다. 평양성 탈환을 위해 명나라에서 마침내 군대를 파병한 것이다. 조선 땅에서 삼국이 부딪히는, 16세기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전의 서막이었다.

조명연합군은 북진하는 일본군을 저지하기 위해 1차 평양 수복작전을 전개했으나 일본군의 매복 작전에 참패한다. 충격에 휩싸인 명나라는 강화 사절로 심유경을 평양에 급파한다. 그해 9월,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와 강화 회담을 가졌고 심유경은 50일 간의 휴전 약속을 받아오며 조명연합군이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어다 준다.

하지만 이 협상에서는 조선의 땅을 명나라와 일본이 나누어 갖자는 할지론(割地論)이 제기되었다. 이후로도 명나라군은 일본에게 퇴각로를 마련해 주는 등 수상한 행보를 걷는데 과연 명나라군의 참전은 약이었을까 독이었을까?

■ 전쟁의 판세를 뒤엎은 평양성 탈환

1593년 1월,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4만여 병력과 도원수 김명원의 조선 관군, 그리고 의병과 승병이 연합한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포위한다. 사흘간 치열한 접전 끝에 일본군은 후퇴하고 마침내 평양성은 탈환된다.

수세에서 공세로 임진왜란의 물줄기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승리의 배후에는 일본군이 예상 못한 비밀병기가 있었다. 평양성 탈환의 승리 비결을 전통무예 전문가와 함께 ‘만물각’에서 파헤쳐본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바꾼 16세기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전 평양성 전투를 25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전쟁의 운명을 바꾸다 제2편 - 평양성’ 편에서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