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은 소르본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5년 전 장학생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갔고 이듬해 2차 대전이 발발 후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한 걸 런던에서 들었다고 했다. 가족과 연락이 끊겼고, 조국으로 돌아오려 애썼지만 유태계인 그의 출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됐다. 프랑스로 도로 들어오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다. 3개월 전 간신히 파리에 들어 왔지만, 그의 가족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의 가족은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다고 했다. 간신히 얻은 그의 가짜 신분은 곧 독일군에게 들통이 났고 그 뒤로 그는
다음 날 노엘 로즈는 퇴근 후 바로 뱅상의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들어가기 전 불안한 마음으로 자기도 모르게 등 뒤를 돌아봤다. 조용한 주택가에는 별 다른 인기척이 없었지만 누군가 미행이라도 한 듯 불안하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 제롬을 여기에 둘 수는 없어. 너무 위험해. ’ 집 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노엘 로즈는 불안한 마음으로 서재로 향했다. “ 제롬? 제롬? ” 지난 번 제롬이 뛰쳐나왔던 서재의 은신처로 들어가는 책장문이 열려있었고, 늦은 오후의 햇살이 서재의 은신처 내밀한 깊숙한 곳까지 비치고 있었지만 지
“ 노엘 로-즈-!! 정말 오랜만이구나-! ” 제롬에 대한 죄책감으로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뱅상의 집을 나서는 로엘 로즈를 누군가 와락 끌어 안았다. 오동통하고 귀여운 인상의 중년여인이 노엘로즈를 향해 반가움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안느 아줌마- ”“ 노엘 로즈-이쁜 건 여전하구나." ” 안느는 뱅상의 가정부였다. 노엘 로즈 역시 갓난 아기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안느와 노엘 로즈는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사이였다. “ 그동안 많이 바빴니? 어쩜 1년 동안 안 올 수가 있니- 어쩌면,” 안느는 노엘 로즈를 한 번 더
새벽눈을 뜨자마자잎 담배를 말았습니다. 말없이혼자 인 양허허로운 미소를 띤 채당신은 잎 담배를 피웠지요. 새벽빛 하늘청명한 푸른 안개 속내쉬던 당신의 푸른 연가를 맡았습니다. 홀로 펴 온당신 곁에 이 담배인 양 있고 싶다생각하며새벽 잎 담배를 정성스레 말았습니다. 이제는 제 새벽 잎 담배를 피워주세요.
“ 어, 움직이지 말아요. 상처가 벌어져요. ”“ 으윽- 당신은- ” 소독약은 생각보다 독했고, 제롬은 자기도 몰래 신음을 질렸다. “ 지금 뭘 하는 거요- ”“ 뭘 하긴. 치료 중이죠. ”“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이거- ! ” 제롬의 손와 발은 밧줄에 묶인 채 침대에 묶여 있었다. 4개의 침대 다리에 고정된 제롬의 몰골은 한 마디로 해부실의 개구리 같았다. 더욱이 그의 상체는 상처의 치료로 인해 벗겨진 상태였다. “ 지금 뭐하는 거요- 노엘 로즈- ” 제롬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힌 채 으르렁거렸다. “ 어, 내 이름을 기억하네.”
밤 11시타임스퀘어 뒷거리에는진달래꽃 암술들이 피어난다. 사진 촬영은 금지몸뚱아리 하나만이 저작권인진달래꽃 암술들은 십 원짜리 동전을유리창에 두드리며거리를 걷는 남자들에게 꿈틀 손짓한다. 따- 다닥메마르게 부딪히는 동전소리애달프게 타임스퀘어 뒷거리에 울리지만 돌아보는 이는 별로 없는 타임스퀘어 뒷거리.
슈나이더와 헤어진 후 노엘로즈는 곧바로 뱅상의 병실로 향했다. “ 삼촌! ”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노엘 로즈를 보자 뱅상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 노엘- 찾았나 보구나. 네 얼굴을 보니 내가 부탁한 걸 잘 찾았어. ”“ 삼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녀석을 거기에 숨겨 놓으신 거예요 - ”“ 쉿- 목소리 좀 낮춰. 벽이 얇다. ”‘ 그래. 이 병원에는 사람도 많고 병실문도 얇으니까.’ 노엘 로즈는 심호흡을 하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 그래, 그 녀석 상태는? ” 하지만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뱅상의 모습을 보
항상 웃고 있고 있었지만웃을 수 없었다. 그곳엔 내가 있었지만존재하지 않았다. 늘 함께였지만언제나 혼자였다. 전화기를 들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서로의 숨소리만 허공을 타고 흘렀다. 하늘은 푸르름 그지없지만 한없이 빗물이 흐른다.
“ 형님- ”“ 당장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 아니, 기껏 걱정돼서 병문안 온 동생한테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두 사람이 서 있는 근처 병실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 네 놈 시커먼 속셈을 내가 모를 거 같으냐- 꺼져- 이 개자식아- ”“ 형님- 하나 밖에 없는 동생에게 이러시는 거 아닙니다- ”“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두 번 다시 오지 마! ” 곧 병실 문이 열리며 땅딸막한 중년의 사내 하나가 튀어 나왔다. “ 쳇, 혼자 애국자인 척은 다 하구 있네. ” 사내는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그대는 불멸이다.그대는 희망이다.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클수록 기다림이 행복하여라 깨어있는 청지기가 되어느리고 힘든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밤새 그대를 기다리네.
지하철이 역으로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노엘 로즈는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병원을 오래 비워 둘 수는 없었다. 아직 오후 진료가 다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 마망! 저거 좀 봐요. 마망! ”“ 쉿 조용히 해. ” 지하철을 타던 노엘 로즈는 꼬마의 외침에 아이가 가르킨 곳을 바라봤다. 그것은 지하철의 마지막 칸이었다. 다른 칸이 비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만 모종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두려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모두 노란 색 별이 큼지막하게 달려 있었다. 유태인들이었다. 파리의 모든 유태
퇴근길집에 들어와 보니문 간에 떠 놓여 있는 물 한 잔우렁각시라도 있나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서야 기억이 난다. 출근길 들고 나가려 떠 놓았던 물 한 잔.갸웃거린 스스로에게 아이쿠야.